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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2.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3.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⑤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
  4.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5. 2008.03.05 [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③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
  6. 2008.03.05 [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7.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8. 2008.03.02 2008: The Demise of Neoliberal Globalization
  9. 2008.03.02 Resisting the Globalization of Food
  10. 2008.03.01 전국 철학과 홈페이지 주소 및 연락처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5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37819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도덕적 리더십은 정치인의 핵심 자질”


e-메일 대담=김영민 서울대 교수

뚜웨이밍(杜維明·68·미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시아 전통 유학(儒學)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서양식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박물관에 들어가 있던 유학의 가치를 유창한 영어로 새롭게 복구해 내고 있다. ‘현대 유학의 전도사’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학문적 입장은 ‘현대신유학(新儒學)’ 혹은 ‘제3기 유학’으로 정리된다. 현대신유학의 문제의식은 19세기 말 이래 세계의 표준이 된 서구적 가치에 맞서 동아시아 유학을 재해석해는 것이다. 현대 신유학자들이 중시한 서구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과학이다.

뚜 교수는 대만에서 대학을 다니며 현대 신유학자의 원조로 분류되는 쉬푸관(徐復觀)·탕쥔이(唐君毅)·머우쭝싼(牟宗三)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 동아시아의 신유학적 통찰을 서양의 지식인들에게 소통 가능한 현재적 형태로 다시 풀어 냈다. 프린스턴대·버클리대 등 명문대 교수와 세계적인 동양학 연구기관인 하버드-옌칭 연구소장을 맡으며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제대로 규모를 갖춘 동양 철학 관련 학술대회치고 그가 안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을 정도다.

뚜 교수의 독특한 점은,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전통의 내부자, 즉 유학자임을 자처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사상 전통이 현대의 정치적, 인문적 문제에 풍요로운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동아시아 사상 전통에서 강조되어 온 자아수양은 바람직한 정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 등 현대신유학의 핵심 주제를 놓고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e메일 대담을 나눴다.

김영민(이하 김)=저명한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은, 정치의 주된 역할을 보통 사람이 아니라 우수한 지혜와 덕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아가 그런 점에서 유교는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유교(특히 성리학)가 민주주의(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뚜웨이밍(이하 뚜)=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루이샹 파이 같은 정치학자는 “유교 민주주의란 형용모순”이라고 못박은 반면, 사무엘 헌팅턴 같은 이는 양자가 공존 가능함을 인정했고, 앰브로스 킹 같은 학자는 오히려 “유교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저명한 현대 신유학자였던 쉬푸관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유가라고 칭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과거 유교 문화권 아래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루어낸 일정 수준의 민주화는, 유교와 민주주의가 적대관계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 것 같다. 그렇다면 로버트 달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거나 적어도 이미 구식이 된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자유민주주의와 유교 전통의 만남이 서구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이념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뚜=유교 인문주의가 서구 민주주의와 양립하느냐 여부를 가치판단 하는 것은 더 이상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핵심 문제는, 민주주의의 함의를 풍부하게 하는 데 있어서 유교 인문주의가 어떤 지적 자원이 될 수 있는가 이다. 나는 유교 인문주의를 통해서, 닫힌 개인주의와 추상적인 보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인권 개념만 해도 단독자로서의 자아라는 자유주의적 전제에 꼭 기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치 엘리트에게 보다 강한 책임을 요구하는 유교 인문주의의 태도는 민주주의에 심오한 함의를 지닐 수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란, 단순히 선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시민의 역동적인 참여와 책임윤리까지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김=유교 전통 속에서 군주의 개인적 도덕은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높은 도덕성을 보장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은 없을까.

뚜=유교적 정치관의 핵심은, 단순히 엘리트의 파워를 규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고안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잡고자 한다는 데 있다. 즉, 유교적 정치의 특징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현상 자체를 도덕의 힘을 통해 갱신해보고자 하는 열망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특질을 현상 유지에 있다고 본 막스 베버의 견해는 틀렸다. 유교 인문주의는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알면서도 그것을 도덕화하고자 하였다. 거기에는 도덕적 리더쉽이야말로 정치인에게 필요한 핵심적 자질이라는 통찰이 들어 있다. 정치는 엄밀한 자아수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많이 가질 수록, 도덕적 책임과 자기수양의 필요성도 늘어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에 필수적인 자기 수양을 위해서 전통 유학에서 ‘예(禮)’ 라는 이름으로 강조해온 제도적 기제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예를 내면화해 나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참다운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김=당신은 스스로를 유학자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학 전통의 내부자로 볼 수 있다. 전통의 내부자의 입장에서 그 전통을 학문적으로 탐구한다고 할 때, 객관성을 위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혹시 유교 전통을 지나치게 찬미하게 될 위험은 없는가.

뚜=인류학이 주는 통찰에 따르면, 외부자와 내부자의 상호작용이야 말로 연구 대상의 이해에 필수적이다. 어떤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넘어 그 대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가 된다는 것은 연구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뚜=이를 테면 『논어』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것과 『논어』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논어』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생기고 전승되었는가를 연구하는 것만 진정한 학문이고, 『논어』로부터 삶의 철학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불행한 일일 것이다. 나는 실증주의적 연구태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경계한다.

김=동아시아 전통 지식인들이 자아수양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을 발전시킨 점이 흥미롭다. ‘정좌(靜坐)’같은 것이 한 예이겠다. 당신이 유교 전통의 내부자로 자처하느니만큼, 당신 스스로 채택하고 있는 자아수양의 기술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뚜=기술이라는 표현보다는 영혼의 수련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정좌 같은 것은 그러한 영혼의 수련 방법중 하나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는 일상 속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상을 어떻게 깨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특별한 기술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든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김=당신의 모국어는 중국어다. 영어권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비서구권 문화를 탐구하면서, 학문의 매개체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뚜=유교는 긴 역사동안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거치면서 변천해왔다. 이를테면 불교전통과 만나서 유교는 큰 변천을 겪은 바 있다. 현대에 이르러 또 한 번의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중국사상을 영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유교 인문주의가 근대화되기 위해서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 인문주의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서 한문의 수련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대화되고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영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정리=배영대 기자

◇뚜웨이밍=1940년 중국 쿤밍(昆明) 출생. 49년 중국 공산화 직후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이주. 57년 대만 둥하이(東海)대 영문과 입학. 대학시절 쉬푸간·머우쭝산 등 현대 신유학자들의 사상을 접하고 진로를 중국 철학으로 바꿈. 61년 졸업과 함께 미 하버드대로 유학해 신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Centrality and Commonality: An Essay on Confucian Religiousness』 『Humanity and Self-Cultivation: Essays in Confucian Thought』 등이 있다.

◇김영민=1966년 출생.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현재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동아시아 정치사상과 비교 정치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도움되는 책들=뚜웨이밍이 쓴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권미숙 옮김·통나무), 『뚜웨이밍의 유학 강의』(정용환 옮김·청계), 『문명 간의 대화』(나성 옮김, 철학과 현실사), 『유학 제3기 발전에 관한 전망』(성균관대 학이회 옮김·아세아문화사) 등이 번역돼 나와 있다. 현대 신유학 관련서로는 『현대 중국 철학』(청중잉 외 편집·정인재 외 옮김·서광사) , 『현대 신유학』(정지아둥 지음·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옮김·예문서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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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3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진리 추구 포기하는건 폭력에 문 여는 것”

e메일 대담=나종석 연세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비토리오 회슬레(V. Hoesle·48·미 노틀댐대) 석좌교수는 젊은 이성주의 철학자다. 1960년생으로 일찍이 20대 초반이던 80년대부터 독일철학뿐 아니라 서양 전통철학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촉망받았다. 독일 튀빙엔대에서 22세에 쓴 박사학위 논문 『진리와 역사』에 대해 현대 해석학의 거장 H. G. 가다머 등 선배 철학자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같은 찬사가 한국에서는 가다머가 회슬레에 대해 “2500년 서양철학사에서 보기 드문 천재”라고 극찬했다는 식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회슬레 본인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며 이번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바로 잡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의 전통은 근대 서양철학 그 자체로 간주될 정도로 막강했었다. 하지만 독일철학의 영광은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며 쇠퇴하기 시작한다.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탈근대 포스트모던적 사조의 영향력 앞에서 객관적 진리를 강조하는 독일 근대철학은 ‘지는 해’처럼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 전통을 고수할 차세대 대표선수로 선배 철학자들의 기대속에 급부상한 인물이 회슬레다.

회슬레는 선배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는 플라톤 및 헤겔철학의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의 추구를 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성에 대해 회의하거나 그것을 위험하다고 비판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흐름과는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한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이성의 억압성과 폭력성을 비판한 반면, 회슬레는 그 같은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현대사회의 각종 위기를 초래했다고 반박한다. 그는 민주주의, 환경위기, 시장경제, 종교 등 각 분야에 만연된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연세대 철학연구소 나종석 전임연구원이 회슬레 교수와 이메일과 전화로 대담을 나눴다.

나종석(이하 나)=당신은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 추구를 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믿음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비토리오 회슬레(이하 회슬레)=이성에 대한 모든 비판은 자기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거나 또는 이제까지의 철학적 전통이 틀렸다는 점을 훌륭한 근거를 갖고 입증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두 경우 모두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경우라면 그 비판은 진지하게 취급될 이유가 없고, 둘째의 경우라면 그런 주장 자체가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은 폭력에 대한 문을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성만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된 진리 주장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주장들에 대한 비판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비판 자체는 이성적이어야만 한다.

나=오늘날의 이성에 대한 회의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 사유가 독단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과 연결된다.

회슬레=실제로 일면적이고 억압적인 것이 자신을 종종 이성적인 것처럼 내세우곤 한다. 예를 들어 유럽중심주의와 식민주의 혹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다른 문화에 속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만, 우리들은 이런 현상들을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보편적 이론을 전제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론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점은 이성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나=당신은 21세기가 생태적인 세기가 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미증유의 엄청난 재앙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경고한 바 있다. 동시에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뿐 아니라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심층생태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회슬레=질량(에너지)보존의 법칙 때문에 우리들은 자연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종들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자연적 존재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든 그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생태 위기와 관련해 비판적 태도를 지니기 위해 우리는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 사이의 규범적 차이들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인간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가치가 있다거나 동물의 생명이 무생물보다 가치가 있다거나 하는 규범적 차이들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 관념론은 인간에게서 절정에 이르는 자연에서의 가치 위계질서를 인정한다.

나=당신은 또 요즈음의 많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종교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회슬레=물론 파괴적인 형태의 종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나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종교가 이성에 대항하는 경우가 특히 파괴적인데, 여러 근본주의들의 경우가 모두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종교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성적인 기독교는 로고스, 즉 이성을 신으로 이해한다. 이성에 바탕을 둔 종교는 인간들에게 가치의 합의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죽음 이후의 삶까지 포함해 삶을 보다 포괄적 시야에서 바라보게 한다 . 기본적으로 종교는 우리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 종교를 통해 이 세계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비로소 의미를 띨 수 있는 것이다.

나=『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에 『만들어진 신』이란 책에서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과 함께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생각을 강하게 비판했다.

회슬레=도킨스는 종교의 저급한 형태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그런 형태의 종교만이 다인 양 종교에 관해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종교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21세기에도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다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학문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찰할 것으로 예견된다. 나는 기독교인이면서도 다윈을 인류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학자들 중의 한명으로 간주한다.

나=당신은 21세기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미래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한국 영화를 자주 보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슬레=나는 내 아내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1980년대에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성취했다. 게다가 러시아, 일본,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결코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행사하지 않은 여러분들의 조국에 대해 나는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풍부한 불교 및 유교 전통을 갖고 있다. 나는 이런 전통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여러 종교가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경탄하고 있다. 나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이 서구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더 발전시키고 환경친화적이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세워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란다.


정리=배영대 기자


 ◇도움되는 책=회슬레가 추구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안내서로는 『헤겔의 체계』(한길사)와 『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에코리브르)를 꼽을 수 있다. 객관적 관념론에 기초한 실천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접근을 하고 싶다면 『도덕과 정치』를,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 영미 언어철학과 객관적 관념론 사이의 지적 연결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에코리브르)를 읽어 볼 만 하다.

 ◇비토리오 회슬레 =1960년생. 독일 튀빙엔대 철학박사.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26세에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제출했다. 곧이어 27세에 환경철학의 거장 한스 요나스 후임으로 뉴욕 뉴 스쿨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교수가 됐다. 독일 에센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미국 노틀댐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 석좌교수로 있다. 『헤겔의 체계』 『도덕과 정치』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철학적 대화』 등의 저서가 있다.

 ◇나종석=1964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독일 에센대에서 헤겔과 비코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정치철학과 독일 관념론이다. 저서로는 『차이와 연대』『삶으로서의 철학:소크라테스의 변론』, 번역서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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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⑤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3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28512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⑤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

“남자·여자 구분은 문화적 상징체계의 산물”


e-메일 대담=김혜숙 이화여대 교수

 주디스 버틀러(52·버클리대)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주의 철학자다. 푸코·들뢰즈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 영향을 받은, 이른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기존의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의 성별(sex) 구분을 전제한 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했다. 이와 달리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결정된 성적 정체성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버틀러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sex) 조차도 사실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젠더·gender)처럼 반복적인 모방적 실행을 통해 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성별과 젠더의 구분을 거부하고 이들을 모두 제도적 지배 담론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 정체성의 해체는 이성애-동성애의 구분조차 권력 담론의 일부로 비판하면서, 동성애를 이성애의 권력적 입장에서 천시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여성주의 이론이 여성의 권리 향상 차원을 넘어 남성까지 포함한 소수자의 성애(性愛·섹슈얼리티) 문제로 관심이 확대되는 지점이다. 동성애에 대한 버틀러의 새로운 인식론을 ‘퀴어(Queer)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틀러의 철학에 대해 ‘여성 없는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김혜숙 교수가 버틀러 교수와 이메일·전화로 대담을 나눴다.

김혜숙(이하 김)=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생물학적 범주를 자연의 법칙, 혹은 천리(天理)로 여겼던 우리의 전통 문화 안에서 보면 당신의 주장은 매우 거북스럽다. 음양사상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주디스 버틀러(이하 버틀러)=우리의 문화적 상징체계는 그 구조가 특정 부류의 인간들에게는 매우 부당할 수 있다. 그것이 권력체계로 작동하며 부정의를 발생시킨다면 그에 관한 성찰과 저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은 그 같은 권력체계의 대표적인 예이며, 나는 소수자 권리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본다. 나는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 정체성이나 자신만의 내밀한 욕망조차 문화적 상징체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김=당신의 이론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성별 범주는 그리 분명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버틀러=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범주로 나누는 문화의 상징체계 안에서 만들어진 의미 부호라고 생각한다. 문화적 실천과 반복적인 흉내내기 행위의 과정 안에서 형성된 것으로, 성적인 범주는 우리의 선택과 실천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성별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협상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김=성정체성의 불안전성이라는 당신의 주장은 여성주의 이론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성별이 불확실한 것이라면 어떻게 여성주의 운동이 가능한가.

버틀러=성별이 인간 이해에 기본을 이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성별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주어지는가.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염색체인가, 호르몬인가, 아니면 해부학 혹은 다른 생리학적 특징들인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성별과 젠더(사회적 성)라고 하는 것에는 ‘이름 붙이기’라는 강력한 실천적 행위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주의 운동은 바로 이 실천적 행위에 개입하여 미래의 젠더 용어들을 만드는 일이다.

김=그런 실천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문화적 관습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문화 상황에서는 여성에 대한 직접적 억압보다 여성의 욕망을 부추기는 형태로 권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억압을 의식하기도 힘들고 비판이나 저항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한국에는 소위 명품을 선호하는 ‘된장녀’라 불리는 여성들이 있다. 된장녀란 말을 이해할 수 있는가.

버틀러=글쎄, 알 것도 같다.

김=이 여성들은 자신이 억압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버틀러=내적 욕망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지 누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까 그들은 억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김=많은 여성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된장녀를 지향하는 욕망이 있다면, 어떻게 저항이 가능한가.

버틀러=된장녀의 욕망은 특권과 부를 상징하는 명품에 대한 욕망이다. 명품을 사면서 그들은 잠시 자신이 그 특권적 위치와 공간을 점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초국가적으로 기호화된 상품의 형식으로 권력은 은밀하게 그녀의 욕망 안에서 작동한다. 권력이 상품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권력은 지구화된 자본의 국지적인 형태로 작동하면서, 노동의 성별분업, 가정 내 낮은 여성의 지위를 공고하게 유지시키는 법적 제도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장치들이 여성에게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자각을 통해서 된장녀의 욕망은 더 많은 경제적 권리와 기회에 대한 요구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여성주의 운동이 한국에서는 가족중심의 전통 문화와 흔히 충돌하고 있다. 당신의 이론에서 가족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버틀러=가족은 내 이론 안에서도 중요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확장된 친척관계와 공동체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가족보다 넓은 개념이다. 출산·성장의례·결혼·노화·죽음(장례)처럼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소중한 것들이 좁게 정의된 가족형태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확장된 친척공동체, 사회제도, 의료제도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계를 보장하지 않을까.

김=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들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여러 형태의 사회적 압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실정이다.

버틀러=성별 전환자나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왜 있는가. 내 생각에는 성규범이 바뀌면 통상적인 세상살이 감각을 잃게 되리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성별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내 자신의 성별도 마찬가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다. 성적 소수자들이 이 세계 안에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하는가를 스스로 자문해보라.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김=당신의 페미니즘은 성적 소수자 뿐 아니라 모든 소외계층과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이론으로도 읽힌다. 국가나 사회의 통합이란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버틀러=오늘날 국가의 역할은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소수자 권리의 보호는 주요한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는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국가의 형태를 찾는 일이다. 다양성의 반대는 일체성 혹은 동일성이다. 일체성의 이념은 언제나 가치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가르는 형식을 제도화하면서 불평등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인다.


정리=배영대 기자


◇주디스 버틀러=1956년생. 예일대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 내 헤겔 해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UC버클리 비교문학·수사학과 교수. 후기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로 손꼽힌다. 헤겔의 주체형성 이론, 푸코의 권력 이론, 알뛰세르와 라캉의 욕망이론, 오스틴의 일상 언어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작 『젠더 트러블』을 비롯해 『욕망의 주체들』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등의 저서가 있다.

 ◇김혜숙=1954년생. 시카고대 철학과에서 현대 영미철학 내 칸트철학의 방법론 해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철학방법론, 여성주의 인식론, 예술철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과 사상』,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편저)이 있다.

 ◇도움되는 책들=『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사라 살리 지음, 김정경 옮김, 앨피), 『안티고네의 주장』(주디스 버틀러 지음, 조현순 옮김, 동문선), 『여성주의철학 입문』 (우줄라 마이어 지음, 송안정 옮김, 철학과현실), 『여성주의 철학』(앨리슨 재거, 아이리스 마리온 영 편집, 한국여성철학회 옮김, 서광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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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2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19622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어”


대담 = 허우성 경희대 교수

  일본에서 연간 생산되는 불교학·인도학 관련 서적이나 논문의 양은 일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 생산되는 양보다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말 일본의 제국주의 시기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근대 ‘일류(日流) 불교’가 20세기 세계 불교학계를 제패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 불교계를 리드한 일본 학자는 대부분 문헌학자였다. 문헌학의 축적된 자산을 기반으로 이제 일본 불교연구는 사상사쪽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불교를 일본사상사의 맥락에서 새롭게 연구하는 흐름의 선봉에 선 학자가 스에키 후미히코(59·사진) 도쿄대 교수다. 그는 불교 내 종파나 인물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연구 방식을 지양한다. 그의 방법론은 ‘불교를 넘어서’다. 불교를 불교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사상사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스에키 교수는 일본 불교의 특징을 배경으로 삼아 ‘사자(死者)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장례식 불교’라는 부정적 평가를 오히려 일본 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승화시키며, 오늘날 불교가 인류에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으로 재해석해 냈다. 허우성 경희대 교수가 스에키 교수와 이메일 대담을 나눴다.

 허우성(이하 허)=한국인들은 538년 백제의 성왕이 일본에 불상과 불경을 처음 전한 일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그 후 1500년 간 일본 불교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선 잘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이하 스에키)=일본 불교는 쇼토쿠 태자 이래 사이초 ·구카이 ·신란 ·도겐 ·니치렌 같은 명승대덕을 배출하면서, 인도·중국·한국의 불교와는 또 다른 일본 불교를 만들어 왔다. 일본 불교는 불(佛, 부처)·법(法, 교리)·승(僧, 교단) 삼보 가운데 부처 숭배가 중심을 이루었고, 사자(死者)에의 공양이 불교 신앙의 주요 활동으로 간주된다.

 허=일본 불교를 ‘장례식 불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스에키=집집마다 불단을 차려 놓았고, 죽은 부모의 영혼을 위해 일정한 시기마다 절에서 천도제를 지낸다. 이같은 양태를 ‘장례식 불교’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 널리 퍼져 있는 불교식 장례는 일본인에게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관념을 가르쳐 왔다. 특히 무상감(無常感)을 일본인의 심성에 심어주었다. 이런 영향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허=당신의 불교관인 ‘사자의 철학’은 어떤 의미인가.

 스에키=불교를 해석하는 법은 다양하다. 나의 해석법은 ‘죽은 자에 대한 불교철학’ 곧 ‘사자론’이다. 현대인은 오만해졌다. 죽음을 상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죽은 자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도 불교도들이 부처의 죽음 이후 부처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서(禪書)인 『벽암록(碧巖錄)』에서 운문(雲門)선사는 죽은 석가모니 부처와 문답하고 있다. 고불(古佛)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를 볼 수 있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허=신도(神道)와 불교의 관계는 어떤가.

 스에키=신도와 불교를 나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로 파악한다. 이 또한 일본 불교의 주요 특징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 의해 양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도와 불교의 분업체계가 일찍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두 종교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인간의 탄생과 결혼, 즉 생과 관련된 경사스러운 일은 신도가 담당하고, 죽음과 관련된 일은 불교가 맡고 있다. 한국·중국과 다른 점이기도 한데, 일본에서는 유교보다 불교의 영향력이 더 강했다. 기독교는 결혼식을 담당하곤 하는데 영향력이 미미하다.

 허=당신의 주저인 『일본불교사』 결론 부분에 “무서운 늪지인 이 나라에서 불교의 뿌리는 과연 썩지 않고 자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보이는데, 무슨 뜻인가.

 스에키=불교의 토착화와 관련된 문제다. 불교가 뿌리내린 곳이면 어디서나 토착 종교들과 결합하며 변화했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게 변질된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일본 불교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일본 불교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일본의 승려들이 대처(帶妻·부인을 얻음)와 육식(肉食)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한국불교에도 순수성과 세속화가 공존한다. 무속과의 결탁이라든가 권력·금력에 대한 집착이 세속화의 사례다.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이행하며 계율의 엄격성이 이완되는 것은 보편적 현상 아닌가.

 스에키=글쎄다. 일본의 승려들은 대승불교에서는 계율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보살의 내면적 정신이 계율의 외면적 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말은 멋지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성실한 수행을 못하는 행태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허=당신은 불교가 일본 근대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한국 불교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일본 불교가 근대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스에키=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일본 불교의 관계가 복잡하고 중요한데, 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다. 일부 불교도들이 전쟁에 반대하기는 커녕 장려한 것은 문제였다. 죠도신슈(淨土眞宗)의 지도자 키요자와 만시(淸澤滿之)의 제자들 중 일부는 아주 공격적이어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미타불의 힘에 대한 순종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1945년 이후 불교 각 종파들이 이에 대해 회개하고 책임을 인정했다. 물론 모든 불교도들이 전쟁에 협력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종교 문제는 국가나 전쟁 등의 세속 문제를 초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전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허=19세기 이래 지속된 동양의 서양 배우기는 철학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불교가 세계를 리드한 점은 돋보인다.

 스에키=일본 지식인들은 근대 서양철학을 성실하게 수입했다. 불교가 예외적이라고 하지만, 크게 보면 서양 배우기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교를 포함한 동양 철학이 서양의 변화에 자극을 주어야 하고, 그런 긍정적 자극을 통해 전쟁과 평화, 환경 파괴 등 지구촌의 현안을 푸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 철학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동양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스에키=달라이 라마의 활동 같은 경우다. 불교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간디의 철학도 중요하다. 동양에는 불교 이외에도 힌두교·유교·도교·이슬람교가 있다. 불교에도 또 여러 전통이 있다. 이런 다양성 자체가 동양 전통의 주요 특성 중 하나다. 이런 다양성 속에 서양 철학의 난국과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수많은 철학적·종교적 원천이 있다. 그 원천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정리=배영대 기자

 ◇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1949년생. 도쿄대 인도철학과 졸업. 1978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료. 불교학·일본 불교사 및 불교사상사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힘. 대표작인 『일본불교사』를 포함해 『일본불교사상사론고』『중세의 신과 부처』『근대 일본과 불교』『메이지 사상가론』『벽암록을 읽는다』 등의 저서가 있다.


 ◇허우성=1953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경희대 부설 비폭력연구소 소장. 저서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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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③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1
“진리는 혁명적 … 기존 지식체계 깨며 생겨” [중앙일보]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③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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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의 거장 계보를 잇는 알랭 바디우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 바디우의 제자인 장용순 박사가 촬영했다.
 서양 철학사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속칭되는 각종 해체주의의 진원지다. 탈근대 해체주의 철학은 신·이성·본질(실체)을 중심으로 사유해온 서양 철학 2500년 역사를 뒤흔들었다. 그같은 해체는 급기야 철학의 존립 근거까지 위협했고, 철학의 역할과 목적을 다시 세우는 반성적 사고로 이어졌다. 푸코·데리다·들뢰즈 등 해체철학자들에 이어 새로운 거장으로 평가받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71) 파리고등사범학교(ENS) 교수가 서 있는 자리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차이의 사상’과 상대주의를 배격하고 다시 고전적인 형태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려 한다. 진리가 하나 뿐이라고 강변하는 서양 전통의 ‘동일성 철학’으로 바디우가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e-메일 대담=김상환 서울대 교수

바디우 역시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진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대신 ‘복수(複數)의 진리’를 세우는 새로운 사유의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바디우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직접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행동하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탈근대적 ‘차이의 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종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철학을 그는 지향한다. 이는 프랑스 좌파 철학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을 전공한 김상환 서울대 교수가 인터뷰 안하기로 ‘악명’높은 바디우 교수와 수차례에 걸쳐 이메일 대화를 나눴다.
 
 김상환(이하 김)=한국 사회도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다인종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민족주의가 강하게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 새로운 윤리관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차이의 철학’이나 ‘차이의 정치학’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끌어안는 새로운 윤리학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바디우 교수는 탈근대 철학자들을 소피스트라고 비판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이하 바디우)=일상적인 삶이나 정치적인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남을 봄에 있어서 ‘차이’보다는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는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류 전체의 근본적인 일체성, 즉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문제가 핵심적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문화적 권리를 지지한다. 문화적 차이들이 다양한 물결을 이루지만 그 안에는 인류의 근본적인 일체성이 함축돼 있다는 나의 신념 때문이다.

 김=진리에 대한 당신의 접근은 독특하다. 하나의 진리가 아닌‘복수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바디우=진리는 혁명적이고 기존의 지식체계를 교란하면서 일어난다. 나는 진리가 생겨나는 4가지 절차가 있다고 본다. 정치·과학·예술·사랑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지 절차가 언제나 공존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철학은 이 점을 무시하고 진리를 과학이나 정치 혹은 예술과 같은 한가지 절차로 환원시켜 봉합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는 진리를 정치에, 영미 분석철학은 과학에, 하이데거의 추종자들은 예술에 봉합했다.

 김=당신의 철학을 흔히 ‘사건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디우=사건은 미증유의 진리가 생산되는 절차다. 철학의 과제는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 현재의 언어를 벗어나면서 출현한 진리에 개입해 사후적으로 명명하는 일이 철학의 과제다. 사건의 1차적 의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건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김=한국은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나서 보다 성숙하고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분위기가 짙다. 그런데 당신은 대의 민주주의나 정당 정치에 회의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디우=선거는 정치적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떤 합의에 기초한 제도이다. 사회가 대충 어떠한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경쟁 그룹들 사이의 의견일치가 없다면, 상대편이 권좌에 오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선거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이는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어떠한 세력도 실질적으로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상환=선거가 어떤 합의 위에 서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바디우=자본주의라는 합의 위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소위 민주주의적인 나라치고 자본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나라, 시장경제가 군림하지 않는 나라, 대기업 CEO가 선거에서 뽑힌 정치인보다 더 큰 권력을 쥐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 선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인간 해방은 자본주의적인 경쟁체제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김=그럼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나.

 바디우=첫 번째 관문은 국가의 선거 형식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대중적 조직을 만드는 데 있다. 핵심 과제는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을 묶는 일이다. 가령 지식인·청년·직장인 그리고 사회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사이에 어떤 행동 단위나 조직 단위를 구성해야 한다.

 김=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한 당신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데, 종교 갈등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바디우=오늘날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이 종교나 문명 간 충돌이라 보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신은 죽었고, 종교는 무력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중세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갈등은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가난하고 헐벗은 인민 대중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충돌은 때로 종교적 성향의 집단들에 의해 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에 의해 창조된 여러 가지의 거대한 불평등이 없다면, 이 집단들은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김=당신의 철학에 따른 정치적 주체는 투사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 같은데, 종교적 근본주의자나 테러리스트와 어떻게 다른가.

 바디우=테러리스트는 전혀 인간 해방의 보편적 비전을 수호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는 종교적 경전에 의해 확립된 폐쇄적인 정체성의 옹호자다. 과거의 열성적인 파시스트 신봉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는 충실과 참여의 정치학은 이런 종류의 폐쇄성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김=요즘 한국 학계는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바디우=내가 볼 때, 인문과학에서 ‘과학’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은 마르크스 전통에서 정의하는 역사,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 소쉬르 이래의 언어학 등 세 가지 정도다. 그 밖의 것들은 보통 ‘고전 연구’라 불리는데, 예술에 관계하는 학술적인 형식에 해당한다. 고전 연구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은 자본주의에 의해 위협 받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술에 대한 실천적 관계를 조직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철학에서 예술은 과학·정치·사랑과 더불어 보편적 진리의 본질적 유형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인문학의 가치를 옹호해야 하는 근거도 거기에 있다. 대학이 자본주의의 요구만을 따라가선 안된다. 대학이 몰두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 자체이고 여기에는 어떠한 제약이나 구속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리=배영대 기자

 ◆도움되는 책=탈근대 해체주의 관련한 번역서로는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민음사),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민음사),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민음사) 등이 있다. 해체주의 비판서로는 알랭 바디우의 『조건들』(새물결),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등이 출간됐다.

 ◆알랭 바디우=1937년생. 수학과 철학에서 모두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현대철학국제연구센터 소장. 문예 창작, 연극 연출로도 명성이 높은 전방위 작가. 마르크스 이론가 알튀세와 함께 활동하다 1968년 5월혁명 이후 결별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철학의 길을 모색했고, 88년 대표작 『존재와 사건』을 출간 했다.

 ◆김상환=1960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파리4대학 철학박사. 『해체론 시대의 철학』 등의 저서가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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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1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04970


“중국 철학의 이상은 만물이 조화롭게 도를 행하는 것” [중앙일보]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동아시아 전통 철학이 어떤 자극을 줄수 있나`
`동·서양 문명이 공존하는 사상적 기반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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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左>와 최진석 서강대 교수가 지난달 중국 선전에서 열린 ‘유장(유교대장경)’편찬회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담=최진석 서강대 교수

 
탕이지에(湯一介·81)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 전통 철학의 현대화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현재 중국 교육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국가사업 ‘유장(儒藏)’ 편찬의 총책임자이 다.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도교의 도교대장경과 같은, ‘유교대장경’을 만드는 사업이다. 20세기에 중국에서조차 핍박받던 유교와 공자가 21세기 들어 긍정적으로 재평가받으며 부활하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유불도 삼교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병행해온 그는 유불도 가운데 어느 한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전통적 중국 철학의 특징이라고 했다. 중국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정신으로 그가 꼽는 것이 ‘우환의식(憂患意識)’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우환의식은 철학적 사고의 출발이고, 화이부동은 철학적 방법론이자 지향점이다. 탕 교수는 인터뷰 중 중국 사회의 인권과 언론 상황에 대한 진솔한 비판을 피력해 ‘지식인으로서의 우환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철학을 전공한 서강대 최진석 교수가 탕이지에 교수를 만났다.

 최진석(이하 최)=동아시아 전통 철학이 세계 철학에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탕이지에(이하 탕)=중국 철학의 핵심은 ‘조화’라고 생각한다. 현대 중국을 전진시킨 유일한 추동력으로 대개 급진주의 사상만을 꼽는 이들이 있으나 그것은 평면적인 이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철학도 중국의 새로운 문화와 철학의 건립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급진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가 공존했던 것이다.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의 충돌’이란게 있다면, 그것은 주로 패권주의와 서양중심주의가 야기했다고 생각한다. 각종 문화는 평등한 대화 속에서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최=탕 교수가 줄곧 주장해온 ‘화이부동’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탕=중국 전통 문화의 최고 이상은 “만물은 함께 자라나지만 서로 해치지 않고, 도(道)는 함께 행해지지만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화이부동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과 국가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화이부동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평화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최=‘유장(儒藏)’편찬은 어떤 사업인가.

 탕=동아시아 유학 경전 전집, 즉 일종의 ‘유교대장경’을 만드는 일이다. 2012년께 1차 작업분을 선보인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유가-도가-불가가 천하를 삼분하였다고 하는데, ‘불장(佛藏)’‘도장(道藏)’은 있어도 ‘유장’은 없었다. 이는 유학이 중국 문화와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와 전통의 정리 및 연구가 폭넓어지고 있는 추세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한국에서 탕 교수는 도교 전공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연구 범위는 유불도 삼교에 두루 걸쳐 있고, 활동은 중국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는 듯하다.

 탕=중국의 학술 전통은 전공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유불도 삼교에 골고루 관심을 유지해 왔다. 뿐만아니라 1970년대부터는 정치가 학술에 깊이 관여하는 데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점은 아마도 중국 전통적 지식인 상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최=중국을 유학의 나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중국인의 실제 생활을 보면 도교적 색채가 강한 것 같다.

 탕=도교는 양생이나 축귀(逐鬼) 혹은 제사와 같은 신령스러운 일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도교의 이런 형식들 배후에는 유가의 도덕적 교화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와 도교의 거리를 나는 그렇게 멀리 보지 않는다.

 최=중국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탕 교수의 견해는 어떤지 혹시 들려줄 수 있나.

 탕=역사적으로 중국은 줄곧 전제국가였다. 이삼천년 동안 이어온 전제정치 체제를 몇 십년 만에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제정치의 유산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중국이 현대화된 국가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선 언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중국의 언론은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대륙의 지식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나라 지식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 있다. 가령 당신이 나를 방문한다고 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 어떤 것을 지금 말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말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우리 정부가 대중으로 하여금 참말을 할 수 있게 하고, 대중의 참말을 즐겨 듣기를 희망한다.

 최=한국의 철학 연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탕=다른 나라 얘기를 하기는 조심스럽다. 대신 우리나라 얘기를 하자면, 철학 교육은 학생들이 독립된 사고를 계발하고, 비판정신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중국 철학 분야의 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단히 자신들의 사상을 개조당해 왔다. 이른바 교조주의의 폐해를 깊게 받아온 것이다. 개혁개방 이래 사상해방을 제창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사상해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은 우리가 완전히 교조주의를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최=현대의 철학 연구는 너무 전문화된 나머지 대중들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생활 세계와는 유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철학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탕=중국이나 동양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경지를 추구한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철학이다. 최근 중국 철학계에서 위단(于丹·베이징사범대) 교수의 『논어』출판과 대중강연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는데,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자 사상을 해석하는데 좀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강의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고전에 내포된 충만한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세계화에 대한 철학적 대응은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탕=중국은 현대화로 가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서양의 현대화 경험을 더 흡수해야 한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든가 ‘동양의 세기’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이른바 ‘서양 중심론’이 옳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동양 중심론’도 옳지 않다.

 최=동아시아 전통철학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리더는 어떤 지도력을 가져야 할까.

 탕=우리가 선출하는 지도자가 고상한 도덕과 멸사봉공 정신이 있고, 예리한 정치적 안목을 갖추고 자기와 다른 의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며, 잘못된 것을 용기 있게 바로 잡는 고도의 철학적 지혜를 갖춘 사람이길 바란다. 중국 전통문화 속에서 동경하는 이른바 ‘성왕(聖王)’일 것이다. 이런 성왕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출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많은 의문이 든다.

정리=배영대 기자


◆탕이지에=1927年 톈진(天津)생. 베이징대 철학과 졸업. 1980년대 후반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중국 문화의 방향을 탐구하던 ‘문화열(文化熱) 논쟁’의 중심에 서서 “정신문화의 개혁 없이는 중국의 현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위진남북조시기의 도교』『중국문화전통 속에서의 유교·도교·불교』등의 저서가 있다.


 ◆최진석=1959년 생.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 . 저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주해서 『노자의소(老子義疏 ) 』 등이 있다.




깊이 읽기

憂患意識<우환의식>
지도자는 세상에 대해 걱정해야


구체적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전통 철학의 출발점이다. 지도자나 지식인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일반인들보다 먼저 세계의 문제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거기에 잘 대처하려는 책임의식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자나 맹자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새 사회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모두 우환의식에서 나왔다. 『주역·계사전』에는 “주역을 지은 사람도 우환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作易者其有憂患乎)”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남긴 다음 구절 역시 자주 인용된다. “(지도자는) 이 세상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이 세상 즐거움을 뒤에 누린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和而不同<화이부동>
서로 다른 것 인정하는 게 군자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나온다. 군자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끼리의 조화를 도모하는데, 소인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엇이나 같게 만들거나 혹은 같아지려고 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뜻이다. 탕이지에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고 한담하는 자리에서 중국 철학의 정신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인데, 그 ‘천인합일’을 이루는 핵심적인 방법이 화이부동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국어(國語)』에도 나오듯이, 다른 것들끼리 만나서 조화를 이루고 협조하면 만사 만물이 번창하지만, 차이를 말살하고 동일하게 해버리면 지속되지 못한다(和實生物, 同則不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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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0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중앙일보·세계철학대회 조직위 공동기획 - 생각의 힘!
이명현 한국조직위 의장 “문명 전환기엔 새 틀 필요 생각의 힘으로 세상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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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대전환점에 서있어요. 19세기 근대문명을 리드한 서양 앞에 그동안 동양은 꼼짝을 못했어요. 동양이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이 시기에 새로운 문명을 전망하는 철학적 논의의 장이 서울에서 펼쳐지는 의미가 상당히 커요.”

‘2008 서울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 의장 이명현(65)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올해는 가장 바쁘면서 보람있는 한해가 될 듯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철학 전공자이지만 그는 동양 전통의 음양 개념을 매우 중시했다.

“우리가 대회를 유치할 때만 해도, 서양철학자들은 동양에 종교만 있지 무슨 철학이 있느냐, 동양에서 무슨 철학대회를 하느냐는 반응들이 있었어요. 이번 대회가 서양인에게도, 우리 동양인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

이 의장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 존재인 인간의 생각은 상황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철학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다양성을 용인하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철학도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의 인터넷 아이디는 ‘noism’이다. no+ism(이념), 즉 어떤 극단화된 입장이나 이념에 구속되기를 거부한다는 의미다. 이 의장은 군부독재를 비판하다 전두환 정부에 의해 서울대 교수직을 해직당했었고, 김영삼 정부에선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철학이란 용어부터 새로 정의해 달라.

“철학이란 결국 문법이다. 인간과 세계를 열어보기 위한 틀이자 행동의 준거다. 각 시대마다 맞는 문법이 있다. 문명의 전환기에 ‘신(新)문법’이 필요하다.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변한다. 나는 줄곧 ‘곳때봄’이란 말을 철학의 의미로 사용해 왔다. 어느 곳에서, 어느 때에, 어떻게 봤나 하는 것이 철학이고 사상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 존재다. 조건화된 인식(conditioned epistemology)을 할 수 밖에 없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이 갑자기 쉬워진 느낌이다.

“과거의 철학은 너무 거품을 많이 만들었다. 인간이 신이나 될 수 있는 것처럼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점차 알게 됐다. 철학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끼리 사용하는 용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 철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생활인에게 철학이 어떤 삶의 안내 역할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경제를 전문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당선됐다. 경제와 철학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일반인들에게는 경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중앙일보 기획 시리즈와 세계철학대회가 우리 문명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보다 큰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경제적 향상만이 아닌 우리 삶 자체가 업그레이드되는 성찰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실용주의가 유행이다. 정확한 철학적 의미는 뭔가.

“미국에서 시작된 프라그마티즘을 일본에서 실용주의로 번역했고 우리가 따랐지만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프라그마티즘의 희랍어 어원인 프라그마는 실천과 실제를 의미한다. 물리 이론으로는 실험을 통해 실증을 해보는 것을 가리킨다.”

-생각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현재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환경 위기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하원의원이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가 한 토론에서 중동문제의 해답을 묻는 질문에‘철학을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중동 문제는 기름 전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 환경문제도 해결 안되고 석유전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 동아시아 철학의 장점은.

“지금까지는 같은 것끼리 사는 데 익숙했다. 이제는 다른 것과의 공존을 존중하는 새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점에서 음양 개념은 동양의 중요한 유산이다. 음과 양은 다르지만, 음이 없으면 양이 없고 양이 없으면 음이 없는 관계다. 서로 다른 것들이 상대방이 안 가진 것을 보충해주는 보완관계이자 상생관계를 표현한다. 그런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오늘날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사고를 지배한 변증법은 다른 것은 반대이고, 모순이며,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서양철학 전공자이면서 동양적 가치에 상당히 열려있는 듯하다.

“ 우리 학계의 가장 큰 병폐가 바로 전공병이다. 20세기가 분과 학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융합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지향하는 시대다. 다른 것이 아름답다 . 다른 것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각으로 바뀔 때 세계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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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The Demise of Neoliberal Globalization

철학/가치론연습 2008. 3. 2. 17:26

2008: The Demise of Neoliberal Globalization, by Immanuel Wallerstein (==*)

2008: 신자유주의의 붕괴

MRzine, 01/02/2008

 

2008: The demise of neoliberal Globalization

 

by Immanuel Wallerstein

 

 

The ideology of neoliberal globalization has been on a roll since the early 1980s. It was not in fact a new idea in the history of the modern world-system, although it claimed to be one. It was rather the very old idea that the governments of the world should get out of the way of large, efficient enterprises in their efforts to prevail in the world market. The first policy implication was that governments, all governments, should permit these corporations freely to cross every frontier with their goods and their capital. The second policy implication was that the governments, all governments, should renounce any role as owners themselves of these productive enterprises, privatizing whatever they own. And the third policy implication was that governments, all governments, should minimize, if not eliminate, any and all kinds of social welfare transfer payments to their populations. This old idea had always been cyclically in fashion.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1980년 초부터 시작되어 왔다. 사실 그것은 현대 세계 체제의 역사에서 새로운 사상은 아니다. 비록 그것이 하나의 이념이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오래된 사상이다. 세계의 정부들은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노력 속에서 거대하고 효과적인 기업의 노선에서부터 태어났다. 첫 번째 정책적 함의는 정부, 모든 정부들은 이러한 기업들이 모든 국경을 그들의 상품과 돈을 가지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정책적 함의는 정부들, 모든 정부들은 이러한 생산적 기업의 소유자로서의 어떠한 역할이든 포기해야 한다. 그들의 소유가 무엇이든 민영화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정책적 함의는 정부들, 모든 정부들은 축소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종류의 사회 복지를 그들의 국민에게 지출해야한다. 이런 오랜 생각은 현대에 주기적으로 나타났었다.

 

In the 1980s, these ideas were proposed as a counterview to the equally old Keynesian and/or socialist views that had been prevailing in most countries around the world: that economies should be mixed (state plus private enterprises); that governments should protect their citizens from the depredations of foreign-owned quasi-monopolist corporations; and that governments should try to equalize life chances by transferring benefits to their less well-off residents (especially education, health, and lifetime guarantees of income levels), which required of course taxation of better-off residents and corporate enterprises.

1980년, 이러한 사상들은 세계의 대다수의 나라에서 우세해왔던, 동일하게 오래된 케인스학파와 사회주의에 반대의견으로 제안되었다. 경제는 혼합되어져야 한다. (국가에 민간기업이 더해져서) 반면 정부는 외국 소유의 준독점자본회사의 약탈로부터 그들의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그들의 빈민층들에게 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과 기업체에 세금을 요구하여, 이익을 줌으로써 평등한 사람의 기회를 실현시켜야 한다. (특별히, 교육, 건강 그리고 수입정도에 따른 삶의 보장)

 

The program of neoliberal globalization took advantage of the worldwide profit stagnation that began after a long period of unprecedented global expansion in the post-1945 period up to the beginning of the 1970s, which had encouraged the Keynesian and/or socialist views to dominate policy. The profit stagnation created balance-of-payments problems for a very large number of the world's governments, especially in the global South and the so-called socialist bloc of nations. The neoliberal counteroffensive was led by the right-wing governments of the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Reagan and Thatcher) plus the two main intergovernmental financial agencies --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the World Bank -- and these jointly created and enforced what came to be called the Washington Consensus. The slogan of this global joint policy was coined by Mrs. Thatcher: TINA, or There is No Alternative. The slogan was intended to convey to all governments that they had to fall in line with the policy recommendations, or they would be punished by slow growth and the refusal of international assistance in any difficulties they might face.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프로그램은 현대(1945)에서부터 1970년 초까지의 전례없는 세계적 경제성장의 오랜 기간 후에 시작된, 이윤의 경기침체에 있는 전 세계에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케인스학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정책을 지배하도록 고무했던 시기였다. 경기침체는 수많은 세계의 국가들에게, 특별히 남반구와 소위 사회주의권 국가들에게 지출의 균형을 깨도록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의 반격은 우익 정부가 이끌어 왔다. -우익정부인 미국과 영국, 중요한 두가지 국가의 금융기관인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더해져서- 그리고 이러한 합작은 워싱턴 합의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어 냈고 시행하였다. 이런 세계적 합동 정책의 구호는 Mrs. Thacher에 의해 만들어졌다.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달리 대안이 없다.) 그 구호는 모든 국가에 전해질 작정이었다. 그들은 정책권고에 따르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성장과 직면하게 될 어려움 속에 국제적 조력을 거부함으로써 처벌할 것이다.

 

The Washington Consensus promised renewed economic growth to everyone and a way out of the global profit stagnation. Politically, the proponents of neoliberal globalization were highly successful. Government after government -- in the global South, in the socialist bloc, and in the strong Western countries -- privatized industries, opened their frontiers to trade and financial transactions, and cut back on the welfare state. Socialist ideas, even Keynesian ideas, were largely discredited in public opinion and renounced by political elites. The most dramatic visible consequence was the fall of the Communist regimes in east-central Europe and the former Soviet Union plus the adoption of a market-friendly policy by still-nominally socialist China.

워싱턴 합의는 모두에게 새로운 경제적 성장과 세계적 경기침체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약속하였다. 정치적으로 신주유주의의 옹호자들은 큰 성고을 거두었다. 정부의 임기 후의 새로운 정부는 -남반구, 사회주의권 그리고 서구강대국들에서- 산업을 민영화하고, 그들의 국경을 열어 교류하였고, 금융거래와 사회복지영역을 줄여 나갔다. 사회주의 이념들, 케이스학파의 이념들에서조차도 크게 일반여론의 신용을 잃었고 정치엘리트들에게 포기되었다. 대부분의 드라마틱하고 명백한 결과는 동부유럽의 공산주의의 몰락이었고 최근의 소비에트연방은 여전히 명목상 사회주의인 중국에 의해서 시장 친화적 정책의 채택을 더했다.

 

The only problem with this great political success was that it was not matched by economic success. The profit stagnation in industrial enterprises worldwide continued. The surge upward of the stock markets everywhere was based not on productive profits but largely on speculative financial manipulations. The distribution of income worldwide and within countries became very skewed -- a massive increase in the income of the top 10% and especially of the top 1% of the world's populations, but a decline in real income of much of the rest of the world's populations.

이런 대단한 정치적 성공과 함께한 유일한 문제는 경제적 성장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산업화된 기업들의 경기침체는 계속되었다. 주식시장의 가격의 치솟음은 어디서든지 생산적 이익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금융 투기 조작에 의한 것이다. 전 세계와 국내에서의 수익 분배는 매우 양극화 되었다. 정상 10%의 수입은 매우 증가하였고 특별히 전 세계 인구의 정상 1%는 특히 증가하였지만 세계인구의 나머지 인구의 대부분의 수입은 감소하였다.

 

Disillusionment with the glories of an unrestrained "market" began to set in by the mid-1990s. This could be seen in many developments: the return to power of more social-welfare-oriented governments in many countries; the turn back to calling for government protectionist policies, especially by labor movements and organizations of rural workers; the worldwide growth of an alterglobalization movement whose slogan was "another world is possible."

제약을 받지 않는 시장의 영광에 대한 각성은 1990년대 중반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많은 발전 속에서 보여질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사회복지 지향적인 정부들의 권력으로의 귀환, 특별히 노동조합운동과 농업노동자의 조직들에 의해서 정부의 보호주의적 정책들을 다시 요구하기 시작, 대안 세계화 운동의 전 세계적 성장의 구호는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이다.

 

This political reaction grew slowly but steadily. Meanwhile, the proponents of neoliberal globalization not only persisted but increased their pressure with the regime of George W. Bush. Bush's government pushed simultaneously more distorted income distribution (via very large tax cuts for the very well-off) and a foreign policy of unilateral macho militarism (the Iraq invasion). It financed this by a fantastic expansion of borrowing (indebtedness) via the sale of U.S. treasury bonds to the controllers of world energy supplies and low-cost production facilities.

이런 정치적 반발은 천천히 성장해갔으며, 꾸준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의 옹호자들은 계속해서 주장했을 뿐 아니라, George W. Bush 정권과 함께 그들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하였으며 증가시켰다. 부시의 정부는 동시에, 더욱 왜곡된 수입분배(매우 많은 세금을 매우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줄여주기)와 일방적이고 무지막지한 군국주의의 외교정책(이라크 침략)을 밀어부쳤다. Bush 정부는 이러한 외교 정책을, 세계에너지 공급의 독점가들에게 미국 재무부 발행의 장기채권 판매와 낮은 가격의 생산설비를 팔아서, 엄청난 채무의 확장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였다.

 

It looked good on paper, if all one read were the figures on the stock markets. But it was a super-credit bubble that was bound to burst, and is now bursting. The Iraq invasion (plus Afghanistan plus Pakistan) are proving a great military and political fiasco. The economic solidity of the United States has been discredited, causing a radical fall in the dollar. And the stock markets of the world are trembling as they face the pricking of the bubble.

만약 사람들이 읽고 있는 전부가 주식 시장의 수치라면 서류상으로는 좋아 보일 것이다.

 

So what are the policy conclusions that governments and populations are drawing? There seem to be four in the offing. The first is the end of the role of the U.S. dollar as the reserve currency of the world, which renders impossible the continuance of the policy of super-indebtedness of both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and its consumers. The second is the return to a high degree of protectionism, both in the global North and the global South. The third is the return of state acquisition of failing enterprises and the implementation of Keynesian measures. The last is the return of more social-welfare redistributive policies.

 

The political balance is swinging back. neoliberal globalization will be written about ten years from now as a cyclical swing in the history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The real question is not whether this phase is over but whether the swing back will be able, as in the past, to restore a state of relative equilibrium in the world-system. Or has too much damage been done? And are we now in for more violent chaos in the world-economy and therefore in the world-system as a w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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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Wallerstein is Distinguished Professor Emeritus of Sociolog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 Among his numerous books are The Modern World-System (1974, 1980, 1989), Unthinking Social Science (1991), After Liberalism (1995),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1999), and The Decline of American Power: The U.S. in a Chaotic World (2003). This commentary was published on 1 February 2008. ⓒ Immanuel Wallerstein, distributed by Agence Global. For rights and permissions, including translations and posting to non-commercial sites, contact: rights@agenceglobal.com, 1.336.686.9002 or 1.336.286.6606. Permission is granted to download, forward electronically, or e-mail to others, provided the essay remains intact and the copyright note is displayed. To contact author, write: immanuel.wallerstein@yale.edu. Visit the archive of Wallerstein's previous commentaries at . These commentaries, published twice monthly, are intended to be reflections on the contemporary world scene, as seen from the perspective not of the immediate headlines but of the long term.


-- 완전 번역해서 올리겠음,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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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isting the Globalization of Food

철학/가치론연습 2008. 3. 2. 16:03

Resisting the Globalization of Food: The Return of the Bread Riot, by Ashley Dawson

음식의 세계화에 저항하며; 빵 폭동의 부활

December 20, 2007

 

resisting the Globalization of Food

The Return of the Bread Riot

 

By ASHLEY DAWSON

 

 

On September 13th, 2007, Italian shoppers, led by a confederation of consumer organizations, staged one of the country's first pasta strikes. In the elegant but rather grimy deindustrialized city of Turin where I'm currently living, erstwhile home to the FIAT auto factories, there were few signs of consumer anger boiling over. No pickets of irate housewives dressed up in inflatable spaghetti costumes outside local groceries, no sign-wavers at the local farmers' market. Was this simply another risible example of the famous Italian proclivity to strike over virtually everything?

2007년 9월 13일 소비자 연합 조직이 주도하여 이탈리안의 구매자들은 국가의 첫 번째 Pasta 불매운동의 하나를 연출하였다. 고상하지만, 더러워지고 산업의 쇠퇴화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전에 피아트 자동차 공장의 본사였던 토리노의 도시는 소비자의 분노를 넘치게 하는 조짐은 거의 없었다. 부풀어 오른 스파게티 복장으로 차려입은 화난 주부들은 식료품점 밖에서 피켓시위도 없었다. 지역 농산물시장에서도 아무런 시위는 없었다. 실질적인 모든 것들을 깨부수려는 유명한 이탈리안의 기질의 단순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스운 사례였던가?

 

Italian consumers were encouraged to boycott pasta for the day in order to protest against price rises of up to 27% over the last year. Pasta was, however, simply a symbolic target. The consumer organizations that masterminded the strike asked shoppers to stay away from markets in general in order to protest against price run-ups in everything from gasoline to rent to the cost of a cup of espresso in the local cafe. Carlo Rienzi, head of one of these organizations, called on the Italian government to pass a decree opening markets on Sundays for special direct sales of food by farmers to consumers, which, he argued, would help lower prices in general.

이탈리아인들은 지난해보다 27% 오른 가격 인상에 대항하기 위하여 하루종일 Psata 불매운동을 하도록 고무되었다. 그러나 Psata는 단순히 상징적인 대상일 뿐이다. 불매운동을 주도한 소비자연합은 가솔린에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의 컵을 빌리는 가격에 이르는 모든 것들의 가격이 오르는 것에 저항하기 위하여, 구매자에게 모든 마켓에 가지말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 조직의 대표 Carlo Rienzi는 일요일에 농부와 소비자간의 특별한 직거래를 위한 시장을 여는 법령을 통과시키도록 이탈리아 정부에 요구하였다. 그가 주장하기로는 일반적으로 더 낮은 가격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Italy is not the only country experiencing growing political turbulence over the cost of staple foods. Last January, 70,000 people marched through the streets of Mexico City in a protest that has become known as the "tortilla riot." In response to these demonstrations, president Felipe Calderon signed an agreement to stabilize tortilla prices, which have skyrocketed more than 700% since 1994, the year that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became law. After NAFTA took effect, many Mexican peasants were pushed off their land as cheap U.S. corn flooded the now tariff-free domestic market. Now that many American farmers are turning over significant portions of their corn harvest to the production of ethanol, Mexican consumers have no hedge against rising international corn prices.

이탈리아는 주요 음식 상품의 가격의 증가로 정치적 격동이 커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니다. 지난 1월 70,000명의 사람들이 멕시코시티 거리를 행진하였다. “토르티야 폭동”으로 알려지게 된 항의 속에서 이러한 시위들에 응답한 대통령 Felipe Calderon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법으로된 그 해인 1994년이래 700% 급등한 토르티야 가격을 안정시키는 협약에 서명하였다. FTFTA가 영향을 미친 후부터, 수많은 멕시코의 소작농들은 그들의 땅에서 밀려났다. 값싼 미국의 옥수수가 관세자유가 된 국내시장에서 흘러넘쳤다. 지금, 그 많은 미국의 농부들은 옥수수 수확물의 상당 부분을 에탄올 생산으로 전향하고 있다. 멕시코 소비자들은 세계적인 옥수수 값의 상승을 막을 방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Where are such apparently isolated protests leading? It might be useful to get some historical perspective by considering one of the world's most famous bread riots. On the morning of October 5th, 1789, a small girl began banging a drum and chanting a protest in one of Paris's markets. According to the historian George Rude, this protest quickly drew a large crowd of sympathetic women, who set out together on a march to make their complaint heard to the royal household in Versailles. Their numbers grew quickly to six or seven thousand; as they marched, the town guards were disarmed and their weapons were handed to men who followed the crowd of enraged women through the streets. We all know where this protest led ultimately.

그렇게 명백하고 고립된 시위들은 어디로 이끌리는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빵 폭동 중에 하나를 고려해봄으로써 어떤 역사적 견해를 얻는 것이 유용할지도 모른다. 1789년 10월 5일 아침에, 작은 소녀가 북을 치기 시작했고, 파리 시장 중 한 곳에서 항의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역사가 Geoge Rude에 따르면, 이 항거는 순식간에 호의적인 여인들의 많은 무리를 끌어당겼다. 그들은 베르사유의 구왕실에 그들의 불평이 들리도록 함께 행군을 하였다. 숫자는 순식간에 6,7천명에 이르렀다. 그들이 행진함으로써 도시 호위병들은 무장해제 당했고, 그들의 무기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화난 여인들의 무리를 따르는 남자들 손에 쥐어졌다. 이 시위가 결국에 어디로 이르게 됐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Yet the march on Versailles, like the storming of the Bastille earlier that year, was motivated not by anger over the conspicuous consumption of royals like Marie Antoinette, but rather by the far more immediate issue of the cost of bread. A laboring family of four in Paris ate 1.2 tons of grain a year in this period, 80 percent of which had to get to the city from the surrounding Paris basin on a poorly maintained road network. In the 1780s a series of floods in this area led to poor harvests, provoking soaring bread prices. By 1789, a worker's daily bread took nearly 90 percent of her or his income. The demand for bread was central to practically all the journees, the popular insurrections and demonstrations that broke out repeatedly in Paris between 1789 and 1795. Women, on whose shoulders the crushing burden of domestic economy rested, were pivotal catalysts and participants in these demonstrations.

베르사유로의 계속되는 행진은, 그해 초 바스티유 습격사건과 같은, 마리앙뜨와네뜨와 같은 왕족의 눈에 띄는 과도한 소비에 화가 난 것이라기보다, 빵의 가격이 직접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파리에 노동에 종사하는 4인 가족은 1년의 기간 동안 1.2톤의 곡물을 먹었다. 1.2톤의 80%는 파리분지로부터 엉망진창으로 유지되는 도로망을 통해서 도시로 들어갔다. 1780년대에 이 지역에서 홍수의 연속은 흉년을 만들었고, 빵 값이 급상승하도록 만들었다. 1789년까지 노동자가 매일 사는 빵은 수입의 90%에 가까이 되었다. 빵의 요구는 매일같이 실질적인 핵심을 이루어왔고, 민중의 폭동과 데모는 1789년과 1759년 사이에 파리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가정경제의 압박되는 부담은 여자들의 어깨에 걸려있었고, 그녀들은 이러한 시위의 중심 역할자이고 참여자였다.

 

Of course, nothing like this could happen today, right? The past decade and a half has seen a global wave of democratization, a vital hedge against famine according to the economist Amartya Sen. In addition, we're blessed with a highly flexible food production and distribution system, the product not simply of a few decades of globalization but also of the thoroughgoing transformation of agriculture wrought by the Green Revolution following the 1950s. There are signs, however, that the energy-intensive practices of industrial agriculture spread around the world by the Green Revolution are not sustainable. As Michael Pollan recently argued in the New York Times,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bees over the last year and the growth of drug-resistant Staphylococcus bacteria (which is now killing more Americans each year than AIDS) are both signs of the precariousness of the vast monocultures on which our current food system is based. According to Pollan, "whenever we try to rearrange natural systems along the lines of a machine or a factory, whether by raising too many pigs in one place or too many almond trees, whatever we may gain in industrial efficiency, we sacrifice in biological resilience."

 

As important as these symptoms of a brewing crisis are, however, one doesn't have to go as far as a hospital ward or an almond grove to get a sense of the unsustainability of the global agricultural system. A trip to the local supermarket to buy pasta will suffice. The rising cereal prices that drew protests in Italy and Mexico this year are the concrete harbingers of a calamity in the making. Over the last year, the food price index of the 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rose by more than 40 percent, adding to a significant increase of 9 percent in 2006. According to the head of the FAO, Jacques Diouf, prices of wheat and oilseeds are at record highs; wheat prices have risen by $130 a ton, or 52 percent, since a year ago. In tandem with this inflation in the cost of staple cereals, reserves have become severely depleted. World wheat stores declined 11 percent this year, to the lowest level since 1980. That corresponds with 12 weeks of the world's total consumption. There are only 8 weeks of corn left.

 

Joachim von Braun, the head of the 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 recently pointed out that crises have not materialized despite these dwindling supplies because states have literally eaten into their national grain stocks. According to von Braun, this situation may change soon because China, in particular, has nearly exhausted its supplies. In a speech in Beijing, von Braun stated that "over the next 12 to 24 months we are in a fairly risky situation. Large consuming nations, particularly China, will feel pressed to enter international markets to bid up prices to unusual levels." Chinese consumers are already facing galloping food inflation. According to a local paper quoted by the Manchester Guardian, three shoppers died recently in a stampede at a supermarket that was offering discounted rapeseed oil. With its massive foreign exchange reserves, China could potentially buy the global food crop many times over, driving international commodity prices through the roof.

 

Just as was true in late-eighteenth century Paris, rising food prices are also related to climatic conditions. The early ­ and still relatively mild ­ effects of global warming have seriously damaged crop yields in breadbasket regions such as Australia and Ukraine in recent years. As S. Mark Howden of Australia's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zation pointed out recently, "If there's a significant change in climate in one of our high production areas, if there is a disease that affects a major crop, we are in a very risky situation."

 

And, just as in the days of the French Revolution, it is the poor who will suffer the most from the spiraling cost of food. International aid agencies are having trouble keeping up with their shipments of food not just as a result of the inflated price of basic foodstuffs, but also because it has become far more expensive to transport food around the world given the surging value of petroleum. High oil prices also directly affect agriculture and, with it, food stocks, because petroleum is a vital ingredient of both fertilizers and pesticides, as well, of course, as being necessary to run the tractors and diesel pumps that are essential to industrial agriculture the world over. In addition, the threat of climate change is affecting poor countries in another way: as bio-fuels have been embraced as an important alternative to petroleum, food and fuel have entered into direct competition. According to a recent article in the Guardian, for example, Bangladeshi officials report that the price of cooking oil - of which it imports 1.2 million tons a year - has almost tripled in the past two years because it is now valued as an alternative to diesel oil.

 

Of course it's hard to say exactly how these disturbing trends will work out, but it's unlikely that there is going to be an easy resolution. The rising cost of oil, one of the central catalysts of the crisis, is not a product of a political showdown as in the 1970s, but rather of speculation prompted by increasingly tight supplies. Moreover, short-term thinking is not likely to resolve our problems. The specter of famine may, for example, lead farmers the world over to expand crop production to ecologically sensitive or otherwise marginal areas. Yet although this may solve a potential crisis in the short term, it obviously does not represent a viable solution to the gathering crisis of the global industrial agricultural system. A more sustainable approach is suggested by FAO head Jacques Diof. With oil and food prices at near record highs, Diof recently argued that rich countries should stop sending food aid to poor nations and should instead concentrate on helping farmers grow food locally. Mr. Diof's plan echoes the call of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Via Campesina, which has made food sovereignty a cornerstone of its battle for peasant rights.

 

Until now, however, such an approach has fallen on deaf ears in the halls of powerful international institutions such as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hich have been dominated by the notion of food security advanced by the US, which argues, as always, for free trade since its industrially produced food products have until now been able to undercut the prices of all competitors on international markets. The result has been policies of food dumping, slashing of price supports that keep small farmers solvent, privatization of credit, and the patenting of crop genetic resources that have combined to push millions of farmers off their land and into the metastasizing mega-cities of the global South. Agriculture is now one of the most monopolistic of industries, with a handful of giant transnational corporations like Monsanto controlling both ends of the production process. Mr. Diof's call for food sovereignty thus implies a wide-ranging transformation of the central institutions of globalization and, indeed, of the entire system of globalized industrial agriculture.

 

With the contradictions of the industrial food system piling up to potentially deadly effect, it is high time we rejected this unsustainable model of globalized food and turned instead to the more sustainable model of local production and food sovereignty championed by organizations like Via Campesina. Organizing a local pasta strike might be a good if humble way to make this point. One can only hope that it will not take bloody bread riots and large-scale famines to push the world down a more sustainable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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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ley Dawson is the author of Mongrel Nation: Diasporic Culture and the Making of Post-Colonial Britain and co-author with Malini Johar Schueller of "Exceptional State: Contemporary US Culture and the New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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