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1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04970


“중국 철학의 이상은 만물이 조화롭게 도를 행하는 것” [중앙일보]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동아시아 전통 철학이 어떤 자극을 줄수 있나`
`동·서양 문명이 공존하는 사상적 기반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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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左>와 최진석 서강대 교수가 지난달 중국 선전에서 열린 ‘유장(유교대장경)’편찬회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담=최진석 서강대 교수

 
탕이지에(湯一介·81)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 전통 철학의 현대화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현재 중국 교육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국가사업 ‘유장(儒藏)’ 편찬의 총책임자이 다.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도교의 도교대장경과 같은, ‘유교대장경’을 만드는 사업이다. 20세기에 중국에서조차 핍박받던 유교와 공자가 21세기 들어 긍정적으로 재평가받으며 부활하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유불도 삼교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병행해온 그는 유불도 가운데 어느 한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전통적 중국 철학의 특징이라고 했다. 중국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정신으로 그가 꼽는 것이 ‘우환의식(憂患意識)’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우환의식은 철학적 사고의 출발이고, 화이부동은 철학적 방법론이자 지향점이다. 탕 교수는 인터뷰 중 중국 사회의 인권과 언론 상황에 대한 진솔한 비판을 피력해 ‘지식인으로서의 우환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철학을 전공한 서강대 최진석 교수가 탕이지에 교수를 만났다.

 최진석(이하 최)=동아시아 전통 철학이 세계 철학에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탕이지에(이하 탕)=중국 철학의 핵심은 ‘조화’라고 생각한다. 현대 중국을 전진시킨 유일한 추동력으로 대개 급진주의 사상만을 꼽는 이들이 있으나 그것은 평면적인 이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철학도 중국의 새로운 문화와 철학의 건립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급진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가 공존했던 것이다.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의 충돌’이란게 있다면, 그것은 주로 패권주의와 서양중심주의가 야기했다고 생각한다. 각종 문화는 평등한 대화 속에서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최=탕 교수가 줄곧 주장해온 ‘화이부동’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탕=중국 전통 문화의 최고 이상은 “만물은 함께 자라나지만 서로 해치지 않고, 도(道)는 함께 행해지지만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화이부동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과 국가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화이부동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평화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최=‘유장(儒藏)’편찬은 어떤 사업인가.

 탕=동아시아 유학 경전 전집, 즉 일종의 ‘유교대장경’을 만드는 일이다. 2012년께 1차 작업분을 선보인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유가-도가-불가가 천하를 삼분하였다고 하는데, ‘불장(佛藏)’‘도장(道藏)’은 있어도 ‘유장’은 없었다. 이는 유학이 중국 문화와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와 전통의 정리 및 연구가 폭넓어지고 있는 추세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한국에서 탕 교수는 도교 전공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연구 범위는 유불도 삼교에 두루 걸쳐 있고, 활동은 중국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는 듯하다.

 탕=중국의 학술 전통은 전공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유불도 삼교에 골고루 관심을 유지해 왔다. 뿐만아니라 1970년대부터는 정치가 학술에 깊이 관여하는 데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점은 아마도 중국 전통적 지식인 상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최=중국을 유학의 나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중국인의 실제 생활을 보면 도교적 색채가 강한 것 같다.

 탕=도교는 양생이나 축귀(逐鬼) 혹은 제사와 같은 신령스러운 일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도교의 이런 형식들 배후에는 유가의 도덕적 교화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와 도교의 거리를 나는 그렇게 멀리 보지 않는다.

 최=중국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탕 교수의 견해는 어떤지 혹시 들려줄 수 있나.

 탕=역사적으로 중국은 줄곧 전제국가였다. 이삼천년 동안 이어온 전제정치 체제를 몇 십년 만에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제정치의 유산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중국이 현대화된 국가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선 언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중국의 언론은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대륙의 지식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나라 지식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 있다. 가령 당신이 나를 방문한다고 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 어떤 것을 지금 말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말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우리 정부가 대중으로 하여금 참말을 할 수 있게 하고, 대중의 참말을 즐겨 듣기를 희망한다.

 최=한국의 철학 연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탕=다른 나라 얘기를 하기는 조심스럽다. 대신 우리나라 얘기를 하자면, 철학 교육은 학생들이 독립된 사고를 계발하고, 비판정신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중국 철학 분야의 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단히 자신들의 사상을 개조당해 왔다. 이른바 교조주의의 폐해를 깊게 받아온 것이다. 개혁개방 이래 사상해방을 제창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사상해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은 우리가 완전히 교조주의를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최=현대의 철학 연구는 너무 전문화된 나머지 대중들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생활 세계와는 유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철학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탕=중국이나 동양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경지를 추구한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철학이다. 최근 중국 철학계에서 위단(于丹·베이징사범대) 교수의 『논어』출판과 대중강연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는데,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자 사상을 해석하는데 좀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강의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고전에 내포된 충만한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세계화에 대한 철학적 대응은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탕=중국은 현대화로 가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서양의 현대화 경험을 더 흡수해야 한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든가 ‘동양의 세기’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이른바 ‘서양 중심론’이 옳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동양 중심론’도 옳지 않다.

 최=동아시아 전통철학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리더는 어떤 지도력을 가져야 할까.

 탕=우리가 선출하는 지도자가 고상한 도덕과 멸사봉공 정신이 있고, 예리한 정치적 안목을 갖추고 자기와 다른 의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며, 잘못된 것을 용기 있게 바로 잡는 고도의 철학적 지혜를 갖춘 사람이길 바란다. 중국 전통문화 속에서 동경하는 이른바 ‘성왕(聖王)’일 것이다. 이런 성왕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출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많은 의문이 든다.

정리=배영대 기자


◆탕이지에=1927年 톈진(天津)생. 베이징대 철학과 졸업. 1980년대 후반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중국 문화의 방향을 탐구하던 ‘문화열(文化熱) 논쟁’의 중심에 서서 “정신문화의 개혁 없이는 중국의 현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위진남북조시기의 도교』『중국문화전통 속에서의 유교·도교·불교』등의 저서가 있다.


 ◆최진석=1959년 생.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 . 저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주해서 『노자의소(老子義疏 ) 』 등이 있다.




깊이 읽기

憂患意識<우환의식>
지도자는 세상에 대해 걱정해야


구체적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전통 철학의 출발점이다. 지도자나 지식인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일반인들보다 먼저 세계의 문제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거기에 잘 대처하려는 책임의식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자나 맹자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새 사회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모두 우환의식에서 나왔다. 『주역·계사전』에는 “주역을 지은 사람도 우환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作易者其有憂患乎)”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남긴 다음 구절 역시 자주 인용된다. “(지도자는) 이 세상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이 세상 즐거움을 뒤에 누린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和而不同<화이부동>
서로 다른 것 인정하는 게 군자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나온다. 군자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끼리의 조화를 도모하는데, 소인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엇이나 같게 만들거나 혹은 같아지려고 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뜻이다. 탕이지에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고 한담하는 자리에서 중국 철학의 정신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인데, 그 ‘천인합일’을 이루는 핵심적인 방법이 화이부동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국어(國語)』에도 나오듯이, 다른 것들끼리 만나서 조화를 이루고 협조하면 만사 만물이 번창하지만, 차이를 말살하고 동일하게 해버리면 지속되지 못한다(和實生物, 同則不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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