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3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진리 추구 포기하는건 폭력에 문 여는 것”

e메일 대담=나종석 연세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비토리오 회슬레(V. Hoesle·48·미 노틀댐대) 석좌교수는 젊은 이성주의 철학자다. 1960년생으로 일찍이 20대 초반이던 80년대부터 독일철학뿐 아니라 서양 전통철학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촉망받았다. 독일 튀빙엔대에서 22세에 쓴 박사학위 논문 『진리와 역사』에 대해 현대 해석학의 거장 H. G. 가다머 등 선배 철학자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같은 찬사가 한국에서는 가다머가 회슬레에 대해 “2500년 서양철학사에서 보기 드문 천재”라고 극찬했다는 식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회슬레 본인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며 이번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바로 잡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의 전통은 근대 서양철학 그 자체로 간주될 정도로 막강했었다. 하지만 독일철학의 영광은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며 쇠퇴하기 시작한다.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탈근대 포스트모던적 사조의 영향력 앞에서 객관적 진리를 강조하는 독일 근대철학은 ‘지는 해’처럼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 전통을 고수할 차세대 대표선수로 선배 철학자들의 기대속에 급부상한 인물이 회슬레다.

회슬레는 선배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는 플라톤 및 헤겔철학의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의 추구를 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성에 대해 회의하거나 그것을 위험하다고 비판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흐름과는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한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이성의 억압성과 폭력성을 비판한 반면, 회슬레는 그 같은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현대사회의 각종 위기를 초래했다고 반박한다. 그는 민주주의, 환경위기, 시장경제, 종교 등 각 분야에 만연된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연세대 철학연구소 나종석 전임연구원이 회슬레 교수와 이메일과 전화로 대담을 나눴다.

나종석(이하 나)=당신은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 추구를 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믿음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비토리오 회슬레(이하 회슬레)=이성에 대한 모든 비판은 자기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거나 또는 이제까지의 철학적 전통이 틀렸다는 점을 훌륭한 근거를 갖고 입증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두 경우 모두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경우라면 그 비판은 진지하게 취급될 이유가 없고, 둘째의 경우라면 그런 주장 자체가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은 폭력에 대한 문을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성만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된 진리 주장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주장들에 대한 비판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비판 자체는 이성적이어야만 한다.

나=오늘날의 이성에 대한 회의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 사유가 독단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과 연결된다.

회슬레=실제로 일면적이고 억압적인 것이 자신을 종종 이성적인 것처럼 내세우곤 한다. 예를 들어 유럽중심주의와 식민주의 혹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다른 문화에 속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만, 우리들은 이런 현상들을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보편적 이론을 전제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론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점은 이성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나=당신은 21세기가 생태적인 세기가 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미증유의 엄청난 재앙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경고한 바 있다. 동시에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뿐 아니라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심층생태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회슬레=질량(에너지)보존의 법칙 때문에 우리들은 자연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종들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자연적 존재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든 그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생태 위기와 관련해 비판적 태도를 지니기 위해 우리는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 사이의 규범적 차이들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인간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가치가 있다거나 동물의 생명이 무생물보다 가치가 있다거나 하는 규범적 차이들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 관념론은 인간에게서 절정에 이르는 자연에서의 가치 위계질서를 인정한다.

나=당신은 또 요즈음의 많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종교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회슬레=물론 파괴적인 형태의 종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나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종교가 이성에 대항하는 경우가 특히 파괴적인데, 여러 근본주의들의 경우가 모두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종교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성적인 기독교는 로고스, 즉 이성을 신으로 이해한다. 이성에 바탕을 둔 종교는 인간들에게 가치의 합의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죽음 이후의 삶까지 포함해 삶을 보다 포괄적 시야에서 바라보게 한다 . 기본적으로 종교는 우리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 종교를 통해 이 세계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비로소 의미를 띨 수 있는 것이다.

나=『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에 『만들어진 신』이란 책에서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과 함께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생각을 강하게 비판했다.

회슬레=도킨스는 종교의 저급한 형태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그런 형태의 종교만이 다인 양 종교에 관해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종교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21세기에도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다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학문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찰할 것으로 예견된다. 나는 기독교인이면서도 다윈을 인류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학자들 중의 한명으로 간주한다.

나=당신은 21세기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미래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한국 영화를 자주 보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슬레=나는 내 아내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1980년대에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성취했다. 게다가 러시아, 일본,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결코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행사하지 않은 여러분들의 조국에 대해 나는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풍부한 불교 및 유교 전통을 갖고 있다. 나는 이런 전통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여러 종교가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경탄하고 있다. 나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이 서구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더 발전시키고 환경친화적이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세워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란다.


정리=배영대 기자


 ◇도움되는 책=회슬레가 추구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안내서로는 『헤겔의 체계』(한길사)와 『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에코리브르)를 꼽을 수 있다. 객관적 관념론에 기초한 실천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접근을 하고 싶다면 『도덕과 정치』를,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 영미 언어철학과 객관적 관념론 사이의 지적 연결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에코리브르)를 읽어 볼 만 하다.

 ◇비토리오 회슬레 =1960년생. 독일 튀빙엔대 철학박사.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26세에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제출했다. 곧이어 27세에 환경철학의 거장 한스 요나스 후임으로 뉴욕 뉴 스쿨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교수가 됐다. 독일 에센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미국 노틀댐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 석좌교수로 있다. 『헤겔의 체계』 『도덕과 정치』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철학적 대화』 등의 저서가 있다.

 ◇나종석=1964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독일 에센대에서 헤겔과 비코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정치철학과 독일 관념론이다. 저서로는 『차이와 연대』『삶으로서의 철학:소크라테스의 변론』, 번역서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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