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5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37819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도덕적 리더십은 정치인의 핵심 자질”


e-메일 대담=김영민 서울대 교수

뚜웨이밍(杜維明·68·미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시아 전통 유학(儒學)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서양식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박물관에 들어가 있던 유학의 가치를 유창한 영어로 새롭게 복구해 내고 있다. ‘현대 유학의 전도사’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학문적 입장은 ‘현대신유학(新儒學)’ 혹은 ‘제3기 유학’으로 정리된다. 현대신유학의 문제의식은 19세기 말 이래 세계의 표준이 된 서구적 가치에 맞서 동아시아 유학을 재해석해는 것이다. 현대 신유학자들이 중시한 서구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과학이다.

뚜 교수는 대만에서 대학을 다니며 현대 신유학자의 원조로 분류되는 쉬푸관(徐復觀)·탕쥔이(唐君毅)·머우쭝싼(牟宗三)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 동아시아의 신유학적 통찰을 서양의 지식인들에게 소통 가능한 현재적 형태로 다시 풀어 냈다. 프린스턴대·버클리대 등 명문대 교수와 세계적인 동양학 연구기관인 하버드-옌칭 연구소장을 맡으며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제대로 규모를 갖춘 동양 철학 관련 학술대회치고 그가 안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을 정도다.

뚜 교수의 독특한 점은,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전통의 내부자, 즉 유학자임을 자처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사상 전통이 현대의 정치적, 인문적 문제에 풍요로운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동아시아 사상 전통에서 강조되어 온 자아수양은 바람직한 정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 등 현대신유학의 핵심 주제를 놓고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e메일 대담을 나눴다.

김영민(이하 김)=저명한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은, 정치의 주된 역할을 보통 사람이 아니라 우수한 지혜와 덕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아가 그런 점에서 유교는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유교(특히 성리학)가 민주주의(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뚜웨이밍(이하 뚜)=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루이샹 파이 같은 정치학자는 “유교 민주주의란 형용모순”이라고 못박은 반면, 사무엘 헌팅턴 같은 이는 양자가 공존 가능함을 인정했고, 앰브로스 킹 같은 학자는 오히려 “유교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저명한 현대 신유학자였던 쉬푸관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유가라고 칭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과거 유교 문화권 아래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루어낸 일정 수준의 민주화는, 유교와 민주주의가 적대관계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 것 같다. 그렇다면 로버트 달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거나 적어도 이미 구식이 된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자유민주주의와 유교 전통의 만남이 서구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이념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뚜=유교 인문주의가 서구 민주주의와 양립하느냐 여부를 가치판단 하는 것은 더 이상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핵심 문제는, 민주주의의 함의를 풍부하게 하는 데 있어서 유교 인문주의가 어떤 지적 자원이 될 수 있는가 이다. 나는 유교 인문주의를 통해서, 닫힌 개인주의와 추상적인 보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인권 개념만 해도 단독자로서의 자아라는 자유주의적 전제에 꼭 기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치 엘리트에게 보다 강한 책임을 요구하는 유교 인문주의의 태도는 민주주의에 심오한 함의를 지닐 수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란, 단순히 선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시민의 역동적인 참여와 책임윤리까지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김=유교 전통 속에서 군주의 개인적 도덕은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높은 도덕성을 보장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은 없을까.

뚜=유교적 정치관의 핵심은, 단순히 엘리트의 파워를 규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고안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잡고자 한다는 데 있다. 즉, 유교적 정치의 특징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현상 자체를 도덕의 힘을 통해 갱신해보고자 하는 열망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특질을 현상 유지에 있다고 본 막스 베버의 견해는 틀렸다. 유교 인문주의는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알면서도 그것을 도덕화하고자 하였다. 거기에는 도덕적 리더쉽이야말로 정치인에게 필요한 핵심적 자질이라는 통찰이 들어 있다. 정치는 엄밀한 자아수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많이 가질 수록, 도덕적 책임과 자기수양의 필요성도 늘어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에 필수적인 자기 수양을 위해서 전통 유학에서 ‘예(禮)’ 라는 이름으로 강조해온 제도적 기제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예를 내면화해 나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참다운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김=당신은 스스로를 유학자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학 전통의 내부자로 볼 수 있다. 전통의 내부자의 입장에서 그 전통을 학문적으로 탐구한다고 할 때, 객관성을 위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혹시 유교 전통을 지나치게 찬미하게 될 위험은 없는가.

뚜=인류학이 주는 통찰에 따르면, 외부자와 내부자의 상호작용이야 말로 연구 대상의 이해에 필수적이다. 어떤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넘어 그 대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가 된다는 것은 연구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뚜=이를 테면 『논어』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것과 『논어』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논어』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생기고 전승되었는가를 연구하는 것만 진정한 학문이고, 『논어』로부터 삶의 철학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불행한 일일 것이다. 나는 실증주의적 연구태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경계한다.

김=동아시아 전통 지식인들이 자아수양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을 발전시킨 점이 흥미롭다. ‘정좌(靜坐)’같은 것이 한 예이겠다. 당신이 유교 전통의 내부자로 자처하느니만큼, 당신 스스로 채택하고 있는 자아수양의 기술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뚜=기술이라는 표현보다는 영혼의 수련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정좌 같은 것은 그러한 영혼의 수련 방법중 하나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는 일상 속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상을 어떻게 깨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특별한 기술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든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김=당신의 모국어는 중국어다. 영어권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비서구권 문화를 탐구하면서, 학문의 매개체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뚜=유교는 긴 역사동안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거치면서 변천해왔다. 이를테면 불교전통과 만나서 유교는 큰 변천을 겪은 바 있다. 현대에 이르러 또 한 번의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중국사상을 영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유교 인문주의가 근대화되기 위해서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 인문주의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서 한문의 수련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대화되고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영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정리=배영대 기자

◇뚜웨이밍=1940년 중국 쿤밍(昆明) 출생. 49년 중국 공산화 직후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이주. 57년 대만 둥하이(東海)대 영문과 입학. 대학시절 쉬푸간·머우쭝산 등 현대 신유학자들의 사상을 접하고 진로를 중국 철학으로 바꿈. 61년 졸업과 함께 미 하버드대로 유학해 신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Centrality and Commonality: An Essay on Confucian Religiousness』 『Humanity and Self-Cultivation: Essays in Confucian Thought』 등이 있다.

◇김영민=1966년 출생.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현재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동아시아 정치사상과 비교 정치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도움되는 책들=뚜웨이밍이 쓴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권미숙 옮김·통나무), 『뚜웨이밍의 유학 강의』(정용환 옮김·청계), 『문명 간의 대화』(나성 옮김, 철학과 현실사), 『유학 제3기 발전에 관한 전망』(성균관대 학이회 옮김·아세아문화사) 등이 번역돼 나와 있다. 현대 신유학 관련서로는 『현대 중국 철학』(청중잉 외 편집·정인재 외 옮김·서광사) , 『현대 신유학』(정지아둥 지음·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옮김·예문서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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