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철학대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⑧·끝 김재권 미 브라운대 석좌교수
  2.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3.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4.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⑤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
  5.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6. 2008.03.05 [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③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
  7. 2008.03.05 [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8. 2008.03.05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9. 2008.03.02 제 22차 세계철학대회 자원활동단 발대식에 참석하고서...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⑧·끝 김재권 미 브라운대 석좌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5

원본주소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03/04/3071932.html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⑧·끝 김재권 미 브라운대 석좌교수

“인간의 마음이 동물보다 낫다고 단정 못해”


대담 = 김기현 서울대 교수

철학자 김재권(74·미 브라운대 석좌교수)씨는 현대 심리철학계의 거장이다. 서울대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대 중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이래 심리철학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이론을 계속 제시해 왔다.

심리철학은 영국과 미국을 주 무대로 발전해온 분석철학의 한 분야다. 주로 마음과 신체의 관계를 천착한다. 자연의 인과관계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마음의 위치는 어디인가, 마음은 신체와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가 등을 연구한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도 이 같은 심신 문제를 탐구, 마음과 신체는 다르다는 심신이원론을 제기한 바 있다.

현대 심리철학은 20세기 후반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성과를 반영하며 마음의 본성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과학의 손이 닿지 않는 최후의 신비 영역으로 간주되던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분해해 보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재권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정신현상을 물리현상에 귀속시키는, 이른바 ‘물리주의’(physicalism)를 강력히 옹호한다. 데카르트와 달리 심신일원론을 내세운다. 인간의 마음에 특별히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마음 또한 자연현상의 일부로 파악하면서, 정신적 사건의 대부분을 뇌의 사건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본다. 서울대 김기현 교수가 그를 만났다.


김기현=인간의 마음은 동서양을 떠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상가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철학자뿐 아니라 종교인의 화두이기도 하다. 마음을 물질에 귀속시키는 당신의 물리주의는 서양의 전통사상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통사유에서 볼 때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재권=마음처럼 신비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없다. 우주는 물질이 격렬히 부딪치고 움직이는 어둡고 황량한 공간이고, 그 드넓은 공간의 아주 미세한 일부인 이 지구에 마음이 거주하고 있다. 이 드넓은 공간의 일부에 어떻게 이런 정신현상이 발생하게 됐는지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초자연적 존재나 초월적 힘에 의존하여 이를 설명하려 하지만, 이것은 한 수수께끼의 자리에 다른 수수께끼를 들여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은 자연현상이며 자연현상은 시공간계의 법칙과 사건, 그리고 인과관계 같은 것을 통해 자연계 내에서 설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현상 또한 신비로운 것이지만, 다윈의 진화론과 최근 분자유전학의 폭발적 발전을 통해 과학적으로 해명되고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신경과학·인공지능·언어학 등으로 이뤄진 인지과학을 통해 마음의 여러 측면이 연구되고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정보처리·언어처리 능력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그 기반이 되는 신경생물학적인 기제도 밝혀지고 있다.

김기현=마음현상이 신경생물학적 현상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모든 정신현상이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는가.

김재권=내가 최근에 낸 책 『물리주의, 또는 그에 충분히 가까운 것』에서도 주장했듯, 나는 여전히 정신적 사건의 대부분이 뇌의 사건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한가지 예외사항을 인정한다. 그것은 감각, 또는 의식의 영역이다. 우리는 커피 향을 맡을 때 그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여 인지할 뿐 아니라, 그와 동반하는 감각도 함께 느낀다. 이런 감각 또는 느낌의 영역은 인지 영역과 달리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현상의 다른 부분인 인지적 상태는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과, 포괄적인 세계관으로서의 물리주의를 대체할 만한 대안적 세계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김기현=인간은 우월한 정신세계를 갖춘 만물의 영장으로 간주되곤 한다. 인간의 마음과 동물의 마음의 차이에 대한 생각은.

김재권=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합리적·논리적 추론을 할 수 있으며, 예술품을 만들고 윤리적 규범을 구성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과 다른 동물의 마음 사이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 이들 사이에 질적으로 구분되는 명확한 선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김기현=인간이 진화의 정도에서 다를 뿐, 정신적 차원에서 다른 동물에 비하여 근본적으로 우월한 존재는 아니라는 뜻인가.

김재권=그렇다. 인간의 마음이 우월하다는 생각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정신적·지성적 능력을 사용해 다리를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의 이기와 예술품을 만들었지만, 그 ‘우월한 마음’이 전쟁·학살·잔혹 행위를 일삼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간의 마음과 지능이 세계를 위해 좋은 것인지 아닌지, 축복인지 저주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인간은 자연계의 일부이며, 우리의 능력은 이 세계 다른 동물과의 능력과 연속선 상에 있다고 믿는다.

김기현=인간만이 언어를 구사할 능력이 있으며,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으므로, 인간만이 사고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재권=동물의 언어와 의사소통에 대한 많은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인간과 동물의 마음 사이에 언어능력에 있어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정도의 차이일 수 있다. 또 인간 수준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이 진화하지 못한 것은 단지 역사상의 우연일지 모른다. 이러한 입장은 철학적으로 가능한 입장임에도 아직 명백히 논의된 바가 없다. 이런 가능성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마음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김기현=영국의 논리학자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컴퓨터 공학이 발전하고 인간을 모델로 하는 사이보그에 관한 영화가 나오면서 이 질문은 철학자뿐 아니라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생각하는 기계를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김재권=기계라는 말은 우리가 현재 또는 미래의 기술을 사용해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만약 이런 의미라면,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술이 마치 우리처럼 생각하고 대화하는 로봇을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단서를 빼면, 이 질문은 그 의미가 불분명해진다. 인간은 세포·분자·원자 등으로 만들어진 물질적 존재다. 나라는 존재도 세포 단위로 해체됐다가 재조합될 수 있다. 초인간적 기술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초인간적 존재에게 나는 결국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다. 물론 나는 생물학적으로 번식된 존재이므로 엄밀한 의미의 기계는 아니다. 그러나 번식되지 않고 공장에서 생산됐을 경우에도 나는 여전히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천재에 의하여 만들어진 생각하고 느끼는 기계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전능한 신에 의하여 지어진 기계일지도 모른다.

정리=배영대 기자

◇도움되는 책 =『심리철학』(김재권 지음, 하종호·김선희 옮김, 철학과 현실사), 『물질과 마음』(처칠랜드 지음, 석봉래 옮김, 서광사), 『심리철학과 인지과학』(김영정 지음, 철학과 현실사), 『물리주의』(김재권 지음, 하종호 옮김, 아카넷)

◇김재권 =1934년 대구 출생. 서울대 불문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55년 한미장학위원회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다트머스대로 유학을 떠나 철학을 전공. 프린스턴대에서 철학박사학위. 미시건대에서 오랫동안 철학교수로 재직했고, 미국철학회 중부지역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심리철학』『수반과 마음』『물리계 내에서의 마음』『물리주의, 또는 그에 충분히 가까운 것』 등이 있다.

◇김기현 =1959년생.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박사학위. 서울대 철학과 교수. 2008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저서로 『현대인식론』이 있다.

: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5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37819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⑦ 뚜웨이밍 미 하버드대 교수

“도덕적 리더십은 정치인의 핵심 자질”


e-메일 대담=김영민 서울대 교수

뚜웨이밍(杜維明·68·미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시아 전통 유학(儒學)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서양식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박물관에 들어가 있던 유학의 가치를 유창한 영어로 새롭게 복구해 내고 있다. ‘현대 유학의 전도사’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학문적 입장은 ‘현대신유학(新儒學)’ 혹은 ‘제3기 유학’으로 정리된다. 현대신유학의 문제의식은 19세기 말 이래 세계의 표준이 된 서구적 가치에 맞서 동아시아 유학을 재해석해는 것이다. 현대 신유학자들이 중시한 서구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과학이다.

뚜 교수는 대만에서 대학을 다니며 현대 신유학자의 원조로 분류되는 쉬푸관(徐復觀)·탕쥔이(唐君毅)·머우쭝싼(牟宗三)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 건너가 동아시아의 신유학적 통찰을 서양의 지식인들에게 소통 가능한 현재적 형태로 다시 풀어 냈다. 프린스턴대·버클리대 등 명문대 교수와 세계적인 동양학 연구기관인 하버드-옌칭 연구소장을 맡으며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제대로 규모를 갖춘 동양 철학 관련 학술대회치고 그가 안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을 정도다.

뚜 교수의 독특한 점은,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전통의 내부자, 즉 유학자임을 자처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아시아의 사상 전통이 현대의 정치적, 인문적 문제에 풍요로운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동아시아 사상 전통에서 강조되어 온 자아수양은 바람직한 정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 등 현대신유학의 핵심 주제를 놓고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e메일 대담을 나눴다.

김영민(이하 김)=저명한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은, 정치의 주된 역할을 보통 사람이 아니라 우수한 지혜와 덕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아가 그런 점에서 유교는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유교(특히 성리학)가 민주주의(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뚜웨이밍(이하 뚜)=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루이샹 파이 같은 정치학자는 “유교 민주주의란 형용모순”이라고 못박은 반면, 사무엘 헌팅턴 같은 이는 양자가 공존 가능함을 인정했고, 앰브로스 킹 같은 학자는 오히려 “유교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저명한 현대 신유학자였던 쉬푸관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적 유가라고 칭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과거 유교 문화권 아래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루어낸 일정 수준의 민주화는, 유교와 민주주의가 적대관계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 것 같다. 그렇다면 로버트 달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거나 적어도 이미 구식이 된 견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자유민주주의와 유교 전통의 만남이 서구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이념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뚜=유교 인문주의가 서구 민주주의와 양립하느냐 여부를 가치판단 하는 것은 더 이상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핵심 문제는, 민주주의의 함의를 풍부하게 하는 데 있어서 유교 인문주의가 어떤 지적 자원이 될 수 있는가 이다. 나는 유교 인문주의를 통해서, 닫힌 개인주의와 추상적인 보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인권 개념만 해도 단독자로서의 자아라는 자유주의적 전제에 꼭 기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치 엘리트에게 보다 강한 책임을 요구하는 유교 인문주의의 태도는 민주주의에 심오한 함의를 지닐 수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란, 단순히 선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시민의 역동적인 참여와 책임윤리까지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김=유교 전통 속에서 군주의 개인적 도덕은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높은 도덕성을 보장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은 없을까.

뚜=유교적 정치관의 핵심은, 단순히 엘리트의 파워를 규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고안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잡고자 한다는 데 있다. 즉, 유교적 정치의 특징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현상 자체를 도덕의 힘을 통해 갱신해보고자 하는 열망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특질을 현상 유지에 있다고 본 막스 베버의 견해는 틀렸다. 유교 인문주의는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알면서도 그것을 도덕화하고자 하였다. 거기에는 도덕적 리더쉽이야말로 정치인에게 필요한 핵심적 자질이라는 통찰이 들어 있다. 정치는 엄밀한 자아수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많이 가질 수록, 도덕적 책임과 자기수양의 필요성도 늘어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에 필수적인 자기 수양을 위해서 전통 유학에서 ‘예(禮)’ 라는 이름으로 강조해온 제도적 기제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예를 내면화해 나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참다운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김=당신은 스스로를 유학자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학 전통의 내부자로 볼 수 있다. 전통의 내부자의 입장에서 그 전통을 학문적으로 탐구한다고 할 때, 객관성을 위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혹시 유교 전통을 지나치게 찬미하게 될 위험은 없는가.

뚜=인류학이 주는 통찰에 따르면, 외부자와 내부자의 상호작용이야 말로 연구 대상의 이해에 필수적이다. 어떤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넘어 그 대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가 된다는 것은 연구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뚜=이를 테면 『논어』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것과 『논어』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논어』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생기고 전승되었는가를 연구하는 것만 진정한 학문이고, 『논어』로부터 삶의 철학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불행한 일일 것이다. 나는 실증주의적 연구태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경계한다.

김=동아시아 전통 지식인들이 자아수양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을 발전시킨 점이 흥미롭다. ‘정좌(靜坐)’같은 것이 한 예이겠다. 당신이 유교 전통의 내부자로 자처하느니만큼, 당신 스스로 채택하고 있는 자아수양의 기술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뚜=기술이라는 표현보다는 영혼의 수련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정좌 같은 것은 그러한 영혼의 수련 방법중 하나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이라는 인간의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는 일상 속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상을 어떻게 깨어 있는 상태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특별한 기술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든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김=당신의 모국어는 중국어다. 영어권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비서구권 문화를 탐구하면서, 학문의 매개체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뚜=유교는 긴 역사동안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거치면서 변천해왔다. 이를테면 불교전통과 만나서 유교는 큰 변천을 겪은 바 있다. 현대에 이르러 또 한 번의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중국사상을 영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유교 인문주의가 근대화되기 위해서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 인문주의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서 한문의 수련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대화되고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영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정리=배영대 기자

◇뚜웨이밍=1940년 중국 쿤밍(昆明) 출생. 49년 중국 공산화 직후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이주. 57년 대만 둥하이(東海)대 영문과 입학. 대학시절 쉬푸간·머우쭝산 등 현대 신유학자들의 사상을 접하고 진로를 중국 철학으로 바꿈. 61년 졸업과 함께 미 하버드대로 유학해 신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Centrality and Commonality: An Essay on Confucian Religiousness』 『Humanity and Self-Cultivation: Essays in Confucian Thought』 등이 있다.

◇김영민=1966년 출생.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현재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동아시아 정치사상과 비교 정치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도움되는 책들=뚜웨이밍이 쓴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권미숙 옮김·통나무), 『뚜웨이밍의 유학 강의』(정용환 옮김·청계), 『문명 간의 대화』(나성 옮김, 철학과 현실사), 『유학 제3기 발전에 관한 전망』(성균관대 학이회 옮김·아세아문화사) 등이 번역돼 나와 있다. 현대 신유학 관련서로는 『현대 중국 철학』(청중잉 외 편집·정인재 외 옮김·서광사) , 『현대 신유학』(정지아둥 지음·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옮김·예문서원) 등이 있다.

: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3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⑥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틀댐대 석좌교수

“진리 추구 포기하는건 폭력에 문 여는 것”

e메일 대담=나종석 연세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비토리오 회슬레(V. Hoesle·48·미 노틀댐대) 석좌교수는 젊은 이성주의 철학자다. 1960년생으로 일찍이 20대 초반이던 80년대부터 독일철학뿐 아니라 서양 전통철학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촉망받았다. 독일 튀빙엔대에서 22세에 쓴 박사학위 논문 『진리와 역사』에 대해 현대 해석학의 거장 H. G. 가다머 등 선배 철학자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같은 찬사가 한국에서는 가다머가 회슬레에 대해 “2500년 서양철학사에서 보기 드문 천재”라고 극찬했다는 식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회슬레 본인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며 이번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바로 잡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의 전통은 근대 서양철학 그 자체로 간주될 정도로 막강했었다. 하지만 독일철학의 영광은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며 쇠퇴하기 시작한다.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탈근대 포스트모던적 사조의 영향력 앞에서 객관적 진리를 강조하는 독일 근대철학은 ‘지는 해’처럼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 전통을 고수할 차세대 대표선수로 선배 철학자들의 기대속에 급부상한 인물이 회슬레다.

회슬레는 선배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는 플라톤 및 헤겔철학의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의 추구를 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성에 대해 회의하거나 그것을 위험하다고 비판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흐름과는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한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이성의 억압성과 폭력성을 비판한 반면, 회슬레는 그 같은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현대사회의 각종 위기를 초래했다고 반박한다. 그는 민주주의, 환경위기, 시장경제, 종교 등 각 분야에 만연된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연세대 철학연구소 나종석 전임연구원이 회슬레 교수와 이메일과 전화로 대담을 나눴다.

나종석(이하 나)=당신은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 추구를 철학적 사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믿음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비토리오 회슬레(이하 회슬레)=이성에 대한 모든 비판은 자기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거나 또는 이제까지의 철학적 전통이 틀렸다는 점을 훌륭한 근거를 갖고 입증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두 경우 모두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경우라면 그 비판은 진지하게 취급될 이유가 없고, 둘째의 경우라면 그런 주장 자체가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은 폭력에 대한 문을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성만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된 진리 주장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주장들에 대한 비판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비판 자체는 이성적이어야만 한다.

나=오늘날의 이성에 대한 회의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 사유가 독단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과 연결된다.

회슬레=실제로 일면적이고 억압적인 것이 자신을 종종 이성적인 것처럼 내세우곤 한다. 예를 들어 유럽중심주의와 식민주의 혹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다른 문화에 속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만, 우리들은 이런 현상들을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보편적 이론을 전제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론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점은 이성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나=당신은 21세기가 생태적인 세기가 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미증유의 엄청난 재앙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경고한 바 있다. 동시에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뿐 아니라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심층생태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회슬레=질량(에너지)보존의 법칙 때문에 우리들은 자연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종들을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자연적 존재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든 그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생태 위기와 관련해 비판적 태도를 지니기 위해 우리는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 사이의 규범적 차이들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인간 생명이 동물의 생명보다 가치가 있다거나 동물의 생명이 무생물보다 가치가 있다거나 하는 규범적 차이들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 관념론은 인간에게서 절정에 이르는 자연에서의 가치 위계질서를 인정한다.

나=당신은 또 요즈음의 많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종교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회슬레=물론 파괴적인 형태의 종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나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종교가 이성에 대항하는 경우가 특히 파괴적인데, 여러 근본주의들의 경우가 모두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종교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성적인 기독교는 로고스, 즉 이성을 신으로 이해한다. 이성에 바탕을 둔 종교는 인간들에게 가치의 합의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죽음 이후의 삶까지 포함해 삶을 보다 포괄적 시야에서 바라보게 한다 . 기본적으로 종교는 우리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에 대한 해석이다. 종교를 통해 이 세계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비로소 의미를 띨 수 있는 것이다.

나=『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에 『만들어진 신』이란 책에서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과 함께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생각을 강하게 비판했다.

회슬레=도킨스는 종교의 저급한 형태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그런 형태의 종교만이 다인 양 종교에 관해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종교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21세기에도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다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학문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찰할 것으로 예견된다. 나는 기독교인이면서도 다윈을 인류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학자들 중의 한명으로 간주한다.

나=당신은 21세기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미래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한국 영화를 자주 보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슬레=나는 내 아내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1980년대에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성취했다. 게다가 러시아, 일본,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결코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행사하지 않은 여러분들의 조국에 대해 나는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독교인들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풍부한 불교 및 유교 전통을 갖고 있다. 나는 이런 전통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여러 종교가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경탄하고 있다. 나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이 서구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더 발전시키고 환경친화적이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세워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란다.


정리=배영대 기자


 ◇도움되는 책=회슬레가 추구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안내서로는 『헤겔의 체계』(한길사)와 『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에코리브르)를 꼽을 수 있다. 객관적 관념론에 기초한 실천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접근을 하고 싶다면 『도덕과 정치』를,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 영미 언어철학과 객관적 관념론 사이의 지적 연결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에코리브르)를 읽어 볼 만 하다.

 ◇비토리오 회슬레 =1960년생. 독일 튀빙엔대 철학박사.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26세에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제출했다. 곧이어 27세에 환경철학의 거장 한스 요나스 후임으로 뉴욕 뉴 스쿨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교수가 됐다. 독일 에센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미국 노틀댐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 석좌교수로 있다. 『헤겔의 체계』 『도덕과 정치』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철학적 대화』 등의 저서가 있다.

 ◇나종석=1964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독일 에센대에서 헤겔과 비코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정치철학과 독일 관념론이다. 저서로는 『차이와 연대』『삶으로서의 철학:소크라테스의 변론』, 번역서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등이 있다.
 
: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⑤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3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28512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⑤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대 교수

“남자·여자 구분은 문화적 상징체계의 산물”


e-메일 대담=김혜숙 이화여대 교수

 주디스 버틀러(52·버클리대)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주의 철학자다. 푸코·들뢰즈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 영향을 받은, 이른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기존의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의 성별(sex) 구분을 전제한 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했다. 이와 달리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결정된 성적 정체성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버틀러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sex) 조차도 사실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젠더·gender)처럼 반복적인 모방적 실행을 통해 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성별과 젠더의 구분을 거부하고 이들을 모두 제도적 지배 담론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 정체성의 해체는 이성애-동성애의 구분조차 권력 담론의 일부로 비판하면서, 동성애를 이성애의 권력적 입장에서 천시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여성주의 이론이 여성의 권리 향상 차원을 넘어 남성까지 포함한 소수자의 성애(性愛·섹슈얼리티) 문제로 관심이 확대되는 지점이다. 동성애에 대한 버틀러의 새로운 인식론을 ‘퀴어(Queer)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틀러의 철학에 대해 ‘여성 없는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김혜숙 교수가 버틀러 교수와 이메일·전화로 대담을 나눴다.

김혜숙(이하 김)=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생물학적 범주를 자연의 법칙, 혹은 천리(天理)로 여겼던 우리의 전통 문화 안에서 보면 당신의 주장은 매우 거북스럽다. 음양사상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주디스 버틀러(이하 버틀러)=우리의 문화적 상징체계는 그 구조가 특정 부류의 인간들에게는 매우 부당할 수 있다. 그것이 권력체계로 작동하며 부정의를 발생시킨다면 그에 관한 성찰과 저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은 그 같은 권력체계의 대표적인 예이며, 나는 소수자 권리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본다. 나는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 정체성이나 자신만의 내밀한 욕망조차 문화적 상징체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김=당신의 이론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성별 범주는 그리 분명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버틀러=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범주로 나누는 문화의 상징체계 안에서 만들어진 의미 부호라고 생각한다. 문화적 실천과 반복적인 흉내내기 행위의 과정 안에서 형성된 것으로, 성적인 범주는 우리의 선택과 실천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성별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협상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김=성정체성의 불안전성이라는 당신의 주장은 여성주의 이론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성별이 불확실한 것이라면 어떻게 여성주의 운동이 가능한가.

버틀러=성별이 인간 이해에 기본을 이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성별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주어지는가.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염색체인가, 호르몬인가, 아니면 해부학 혹은 다른 생리학적 특징들인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성별과 젠더(사회적 성)라고 하는 것에는 ‘이름 붙이기’라는 강력한 실천적 행위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주의 운동은 바로 이 실천적 행위에 개입하여 미래의 젠더 용어들을 만드는 일이다.

김=그런 실천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문화적 관습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문화 상황에서는 여성에 대한 직접적 억압보다 여성의 욕망을 부추기는 형태로 권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억압을 의식하기도 힘들고 비판이나 저항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한국에는 소위 명품을 선호하는 ‘된장녀’라 불리는 여성들이 있다. 된장녀란 말을 이해할 수 있는가.

버틀러=글쎄, 알 것도 같다.

김=이 여성들은 자신이 억압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버틀러=내적 욕망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지 누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니까 그들은 억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김=많은 여성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된장녀를 지향하는 욕망이 있다면, 어떻게 저항이 가능한가.

버틀러=된장녀의 욕망은 특권과 부를 상징하는 명품에 대한 욕망이다. 명품을 사면서 그들은 잠시 자신이 그 특권적 위치와 공간을 점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초국가적으로 기호화된 상품의 형식으로 권력은 은밀하게 그녀의 욕망 안에서 작동한다. 권력이 상품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권력은 지구화된 자본의 국지적인 형태로 작동하면서, 노동의 성별분업, 가정 내 낮은 여성의 지위를 공고하게 유지시키는 법적 제도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장치들이 여성에게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자각을 통해서 된장녀의 욕망은 더 많은 경제적 권리와 기회에 대한 요구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여성주의 운동이 한국에서는 가족중심의 전통 문화와 흔히 충돌하고 있다. 당신의 이론에서 가족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버틀러=가족은 내 이론 안에서도 중요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확장된 친척관계와 공동체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가족보다 넓은 개념이다. 출산·성장의례·결혼·노화·죽음(장례)처럼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소중한 것들이 좁게 정의된 가족형태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확장된 친척공동체, 사회제도, 의료제도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계를 보장하지 않을까.

김=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들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여러 형태의 사회적 압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실정이다.

버틀러=성별 전환자나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왜 있는가. 내 생각에는 성규범이 바뀌면 통상적인 세상살이 감각을 잃게 되리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성별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내 자신의 성별도 마찬가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다. 성적 소수자들이 이 세계 안에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하는가를 스스로 자문해보라.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김=당신의 페미니즘은 성적 소수자 뿐 아니라 모든 소외계층과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이론으로도 읽힌다. 국가나 사회의 통합이란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버틀러=오늘날 국가의 역할은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소수자 권리의 보호는 주요한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는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국가의 형태를 찾는 일이다. 다양성의 반대는 일체성 혹은 동일성이다. 일체성의 이념은 언제나 가치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가르는 형식을 제도화하면서 불평등을 지지하는 양상을 보인다.


정리=배영대 기자


◇주디스 버틀러=1956년생. 예일대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 내 헤겔 해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UC버클리 비교문학·수사학과 교수. 후기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로 손꼽힌다. 헤겔의 주체형성 이론, 푸코의 권력 이론, 알뛰세르와 라캉의 욕망이론, 오스틴의 일상 언어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작 『젠더 트러블』을 비롯해 『욕망의 주체들』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등의 저서가 있다.

 ◇김혜숙=1954년생. 시카고대 철학과에서 현대 영미철학 내 칸트철학의 방법론 해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철학방법론, 여성주의 인식론, 예술철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예술과 사상』, 『포스트모더니즘과 철학』(편저)이 있다.

 ◇도움되는 책들=『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사라 살리 지음, 김정경 옮김, 앨피), 『안티고네의 주장』(주디스 버틀러 지음, 조현순 옮김, 동문선), 『여성주의철학 입문』 (우줄라 마이어 지음, 송안정 옮김, 철학과현실), 『여성주의 철학』(앨리슨 재거, 아이리스 마리온 영 편집, 한국여성철학회 옮김, 서광사) 등.
: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2

원본주소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19622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어”


대담 = 허우성 경희대 교수

  일본에서 연간 생산되는 불교학·인도학 관련 서적이나 논문의 양은 일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 생산되는 양보다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말 일본의 제국주의 시기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근대 ‘일류(日流) 불교’가 20세기 세계 불교학계를 제패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 불교계를 리드한 일본 학자는 대부분 문헌학자였다. 문헌학의 축적된 자산을 기반으로 이제 일본 불교연구는 사상사쪽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불교를 일본사상사의 맥락에서 새롭게 연구하는 흐름의 선봉에 선 학자가 스에키 후미히코(59·사진) 도쿄대 교수다. 그는 불교 내 종파나 인물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연구 방식을 지양한다. 그의 방법론은 ‘불교를 넘어서’다. 불교를 불교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사상사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스에키 교수는 일본 불교의 특징을 배경으로 삼아 ‘사자(死者)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장례식 불교’라는 부정적 평가를 오히려 일본 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승화시키며, 오늘날 불교가 인류에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으로 재해석해 냈다. 허우성 경희대 교수가 스에키 교수와 이메일 대담을 나눴다.

 허우성(이하 허)=한국인들은 538년 백제의 성왕이 일본에 불상과 불경을 처음 전한 일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그 후 1500년 간 일본 불교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선 잘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이하 스에키)=일본 불교는 쇼토쿠 태자 이래 사이초 ·구카이 ·신란 ·도겐 ·니치렌 같은 명승대덕을 배출하면서, 인도·중국·한국의 불교와는 또 다른 일본 불교를 만들어 왔다. 일본 불교는 불(佛, 부처)·법(法, 교리)·승(僧, 교단) 삼보 가운데 부처 숭배가 중심을 이루었고, 사자(死者)에의 공양이 불교 신앙의 주요 활동으로 간주된다.

 허=일본 불교를 ‘장례식 불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스에키=집집마다 불단을 차려 놓았고, 죽은 부모의 영혼을 위해 일정한 시기마다 절에서 천도제를 지낸다. 이같은 양태를 ‘장례식 불교’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 널리 퍼져 있는 불교식 장례는 일본인에게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관념을 가르쳐 왔다. 특히 무상감(無常感)을 일본인의 심성에 심어주었다. 이런 영향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허=당신의 불교관인 ‘사자의 철학’은 어떤 의미인가.

 스에키=불교를 해석하는 법은 다양하다. 나의 해석법은 ‘죽은 자에 대한 불교철학’ 곧 ‘사자론’이다. 현대인은 오만해졌다. 죽음을 상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죽은 자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도 불교도들이 부처의 죽음 이후 부처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서(禪書)인 『벽암록(碧巖錄)』에서 운문(雲門)선사는 죽은 석가모니 부처와 문답하고 있다. 고불(古佛)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를 볼 수 있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허=신도(神道)와 불교의 관계는 어떤가.

 스에키=신도와 불교를 나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로 파악한다. 이 또한 일본 불교의 주요 특징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 의해 양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도와 불교의 분업체계가 일찍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두 종교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인간의 탄생과 결혼, 즉 생과 관련된 경사스러운 일은 신도가 담당하고, 죽음과 관련된 일은 불교가 맡고 있다. 한국·중국과 다른 점이기도 한데, 일본에서는 유교보다 불교의 영향력이 더 강했다. 기독교는 결혼식을 담당하곤 하는데 영향력이 미미하다.

 허=당신의 주저인 『일본불교사』 결론 부분에 “무서운 늪지인 이 나라에서 불교의 뿌리는 과연 썩지 않고 자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보이는데, 무슨 뜻인가.

 스에키=불교의 토착화와 관련된 문제다. 불교가 뿌리내린 곳이면 어디서나 토착 종교들과 결합하며 변화했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게 변질된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일본 불교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일본 불교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일본의 승려들이 대처(帶妻·부인을 얻음)와 육식(肉食)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한국불교에도 순수성과 세속화가 공존한다. 무속과의 결탁이라든가 권력·금력에 대한 집착이 세속화의 사례다.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이행하며 계율의 엄격성이 이완되는 것은 보편적 현상 아닌가.

 스에키=글쎄다. 일본의 승려들은 대승불교에서는 계율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보살의 내면적 정신이 계율의 외면적 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말은 멋지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성실한 수행을 못하는 행태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허=당신은 불교가 일본 근대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한국 불교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일본 불교가 근대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스에키=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일본 불교의 관계가 복잡하고 중요한데, 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다. 일부 불교도들이 전쟁에 반대하기는 커녕 장려한 것은 문제였다. 죠도신슈(淨土眞宗)의 지도자 키요자와 만시(淸澤滿之)의 제자들 중 일부는 아주 공격적이어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미타불의 힘에 대한 순종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1945년 이후 불교 각 종파들이 이에 대해 회개하고 책임을 인정했다. 물론 모든 불교도들이 전쟁에 협력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종교 문제는 국가나 전쟁 등의 세속 문제를 초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전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허=19세기 이래 지속된 동양의 서양 배우기는 철학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불교가 세계를 리드한 점은 돋보인다.

 스에키=일본 지식인들은 근대 서양철학을 성실하게 수입했다. 불교가 예외적이라고 하지만, 크게 보면 서양 배우기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교를 포함한 동양 철학이 서양의 변화에 자극을 주어야 하고, 그런 긍정적 자극을 통해 전쟁과 평화, 환경 파괴 등 지구촌의 현안을 푸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 철학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동양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스에키=달라이 라마의 활동 같은 경우다. 불교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간디의 철학도 중요하다. 동양에는 불교 이외에도 힌두교·유교·도교·이슬람교가 있다. 불교에도 또 여러 전통이 있다. 이런 다양성 자체가 동양 전통의 주요 특성 중 하나다. 이런 다양성 속에 서양 철학의 난국과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수많은 철학적·종교적 원천이 있다. 그 원천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정리=배영대 기자

 ◇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1949년생. 도쿄대 인도철학과 졸업. 1978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료. 불교학·일본 불교사 및 불교사상사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힘. 대표작인 『일본불교사』를 포함해 『일본불교사상사론고』『중세의 신과 부처』『근대 일본과 불교』『메이지 사상가론』『벽암록을 읽는다』 등의 저서가 있다.


 ◇허우성=1953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경희대 부설 비폭력연구소 소장. 저서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 .
:

[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③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1
“진리는 혁명적 … 기존 지식체계 깨며 생겨” [중앙일보]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③ 알랭 바디우 파리 고등사범학교 교수
<script src="http://article.joins.com/ui/javascript/joins_find_window.js" type=text/javascript></script>
프랑스 철학의 거장 계보를 잇는 알랭 바디우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 바디우의 제자인 장용순 박사가 촬영했다.
 서양 철학사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속칭되는 각종 해체주의의 진원지다. 탈근대 해체주의 철학은 신·이성·본질(실체)을 중심으로 사유해온 서양 철학 2500년 역사를 뒤흔들었다. 그같은 해체는 급기야 철학의 존립 근거까지 위협했고, 철학의 역할과 목적을 다시 세우는 반성적 사고로 이어졌다. 푸코·데리다·들뢰즈 등 해체철학자들에 이어 새로운 거장으로 평가받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71) 파리고등사범학교(ENS) 교수가 서 있는 자리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차이의 사상’과 상대주의를 배격하고 다시 고전적인 형태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려 한다. 진리가 하나 뿐이라고 강변하는 서양 전통의 ‘동일성 철학’으로 바디우가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e-메일 대담=김상환 서울대 교수

바디우 역시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진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대신 ‘복수(複數)의 진리’를 세우는 새로운 사유의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바디우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직접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행동하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탈근대적 ‘차이의 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종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철학을 그는 지향한다. 이는 프랑스 좌파 철학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을 전공한 김상환 서울대 교수가 인터뷰 안하기로 ‘악명’높은 바디우 교수와 수차례에 걸쳐 이메일 대화를 나눴다.
 
 김상환(이하 김)=한국 사회도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다인종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민족주의가 강하게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 새로운 윤리관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차이의 철학’이나 ‘차이의 정치학’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끌어안는 새로운 윤리학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바디우 교수는 탈근대 철학자들을 소피스트라고 비판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이하 바디우)=일상적인 삶이나 정치적인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남을 봄에 있어서 ‘차이’보다는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는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류 전체의 근본적인 일체성, 즉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문제가 핵심적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문화적 권리를 지지한다. 문화적 차이들이 다양한 물결을 이루지만 그 안에는 인류의 근본적인 일체성이 함축돼 있다는 나의 신념 때문이다.

 김=진리에 대한 당신의 접근은 독특하다. 하나의 진리가 아닌‘복수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바디우=진리는 혁명적이고 기존의 지식체계를 교란하면서 일어난다. 나는 진리가 생겨나는 4가지 절차가 있다고 본다. 정치·과학·예술·사랑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지 절차가 언제나 공존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철학은 이 점을 무시하고 진리를 과학이나 정치 혹은 예술과 같은 한가지 절차로 환원시켜 봉합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는 진리를 정치에, 영미 분석철학은 과학에, 하이데거의 추종자들은 예술에 봉합했다.

 김=당신의 철학을 흔히 ‘사건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디우=사건은 미증유의 진리가 생산되는 절차다. 철학의 과제는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 현재의 언어를 벗어나면서 출현한 진리에 개입해 사후적으로 명명하는 일이 철학의 과제다. 사건의 1차적 의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건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김=한국은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나서 보다 성숙하고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분위기가 짙다. 그런데 당신은 대의 민주주의나 정당 정치에 회의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디우=선거는 정치적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떤 합의에 기초한 제도이다. 사회가 대충 어떠한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경쟁 그룹들 사이의 의견일치가 없다면, 상대편이 권좌에 오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선거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이는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어떠한 세력도 실질적으로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상환=선거가 어떤 합의 위에 서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바디우=자본주의라는 합의 위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소위 민주주의적인 나라치고 자본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나라, 시장경제가 군림하지 않는 나라, 대기업 CEO가 선거에서 뽑힌 정치인보다 더 큰 권력을 쥐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 선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인간 해방은 자본주의적인 경쟁체제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김=그럼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나.

 바디우=첫 번째 관문은 국가의 선거 형식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대중적 조직을 만드는 데 있다. 핵심 과제는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을 묶는 일이다. 가령 지식인·청년·직장인 그리고 사회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사이에 어떤 행동 단위나 조직 단위를 구성해야 한다.

 김=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한 당신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데, 종교 갈등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바디우=오늘날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이 종교나 문명 간 충돌이라 보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신은 죽었고, 종교는 무력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중세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갈등은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가난하고 헐벗은 인민 대중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충돌은 때로 종교적 성향의 집단들에 의해 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에 의해 창조된 여러 가지의 거대한 불평등이 없다면, 이 집단들은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김=당신의 철학에 따른 정치적 주체는 투사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 같은데, 종교적 근본주의자나 테러리스트와 어떻게 다른가.

 바디우=테러리스트는 전혀 인간 해방의 보편적 비전을 수호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는 종교적 경전에 의해 확립된 폐쇄적인 정체성의 옹호자다. 과거의 열성적인 파시스트 신봉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는 충실과 참여의 정치학은 이런 종류의 폐쇄성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김=요즘 한국 학계는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바디우=내가 볼 때, 인문과학에서 ‘과학’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은 마르크스 전통에서 정의하는 역사,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 소쉬르 이래의 언어학 등 세 가지 정도다. 그 밖의 것들은 보통 ‘고전 연구’라 불리는데, 예술에 관계하는 학술적인 형식에 해당한다. 고전 연구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은 자본주의에 의해 위협 받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술에 대한 실천적 관계를 조직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철학에서 예술은 과학·정치·사랑과 더불어 보편적 진리의 본질적 유형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인문학의 가치를 옹호해야 하는 근거도 거기에 있다. 대학이 자본주의의 요구만을 따라가선 안된다. 대학이 몰두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 자체이고 여기에는 어떠한 제약이나 구속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리=배영대 기자

 ◆도움되는 책=탈근대 해체주의 관련한 번역서로는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민음사),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민음사),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민음사) 등이 있다. 해체주의 비판서로는 알랭 바디우의 『조건들』(새물결),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등이 출간됐다.

 ◆알랭 바디우=1937년생. 수학과 철학에서 모두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현대철학국제연구센터 소장. 문예 창작, 연극 연출로도 명성이 높은 전방위 작가. 마르크스 이론가 알튀세와 함께 활동하다 1968년 5월혁명 이후 결별했다. 80년대 들어 새로운 철학의 길을 모색했고, 88년 대표작 『존재와 사건』을 출간 했다.

 ◆김상환=1960년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파리4대학 철학박사. 『해체론 시대의 철학』 등의 저서가 있 다.
:

[중앙]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1

출처: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04970


“중국 철학의 이상은 만물이 조화롭게 도를 행하는 것” [중앙일보]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②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
`동아시아 전통 철학이 어떤 자극을 줄수 있나`
`동·서양 문명이 공존하는 사상적 기반 줄 수 있어`
<script src="http://article.joins.com/ui/javascript/joins_find_window.js" type=text/javascript></script>
탕이지에 베이징대 교수<左>와 최진석 서강대 교수가 지난달 중국 선전에서 열린 ‘유장(유교대장경)’편찬회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담=최진석 서강대 교수

 
탕이지에(湯一介·81)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 전통 철학의 현대화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현재 중국 교육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국가사업 ‘유장(儒藏)’ 편찬의 총책임자이 다.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도교의 도교대장경과 같은, ‘유교대장경’을 만드는 사업이다. 20세기에 중국에서조차 핍박받던 유교와 공자가 21세기 들어 긍정적으로 재평가받으며 부활하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유불도 삼교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병행해온 그는 유불도 가운데 어느 한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전통적 중국 철학의 특징이라고 했다. 중국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정신으로 그가 꼽는 것이 ‘우환의식(憂患意識)’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우환의식은 철학적 사고의 출발이고, 화이부동은 철학적 방법론이자 지향점이다. 탕 교수는 인터뷰 중 중국 사회의 인권과 언론 상황에 대한 진솔한 비판을 피력해 ‘지식인으로서의 우환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철학을 전공한 서강대 최진석 교수가 탕이지에 교수를 만났다.

 최진석(이하 최)=동아시아 전통 철학이 세계 철학에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탕이지에(이하 탕)=중국 철학의 핵심은 ‘조화’라고 생각한다. 현대 중국을 전진시킨 유일한 추동력으로 대개 급진주의 사상만을 꼽는 이들이 있으나 그것은 평면적인 이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철학도 중국의 새로운 문화와 철학의 건립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급진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가 공존했던 것이다.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의 충돌’이란게 있다면, 그것은 주로 패권주의와 서양중심주의가 야기했다고 생각한다. 각종 문화는 평등한 대화 속에서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최=탕 교수가 줄곧 주장해온 ‘화이부동’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탕=중국 전통 문화의 최고 이상은 “만물은 함께 자라나지만 서로 해치지 않고, 도(道)는 함께 행해지지만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화이부동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과 국가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화이부동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평화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최=‘유장(儒藏)’편찬은 어떤 사업인가.

 탕=동아시아 유학 경전 전집, 즉 일종의 ‘유교대장경’을 만드는 일이다. 2012년께 1차 작업분을 선보인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유가-도가-불가가 천하를 삼분하였다고 하는데, ‘불장(佛藏)’‘도장(道藏)’은 있어도 ‘유장’은 없었다. 이는 유학이 중국 문화와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와 전통의 정리 및 연구가 폭넓어지고 있는 추세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한국에서 탕 교수는 도교 전공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연구 범위는 유불도 삼교에 두루 걸쳐 있고, 활동은 중국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는 듯하다.

 탕=중국의 학술 전통은 전공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유불도 삼교에 골고루 관심을 유지해 왔다. 뿐만아니라 1970년대부터는 정치가 학술에 깊이 관여하는 데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점은 아마도 중국 전통적 지식인 상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최=중국을 유학의 나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중국인의 실제 생활을 보면 도교적 색채가 강한 것 같다.

 탕=도교는 양생이나 축귀(逐鬼) 혹은 제사와 같은 신령스러운 일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도교의 이런 형식들 배후에는 유가의 도덕적 교화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와 도교의 거리를 나는 그렇게 멀리 보지 않는다.

 최=중국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탕 교수의 견해는 어떤지 혹시 들려줄 수 있나.

 탕=역사적으로 중국은 줄곧 전제국가였다. 이삼천년 동안 이어온 전제정치 체제를 몇 십년 만에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제정치의 유산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중국이 현대화된 국가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선 언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중국의 언론은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대륙의 지식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나라 지식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 있다. 가령 당신이 나를 방문한다고 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 어떤 것을 지금 말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말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우리 정부가 대중으로 하여금 참말을 할 수 있게 하고, 대중의 참말을 즐겨 듣기를 희망한다.

 최=한국의 철학 연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탕=다른 나라 얘기를 하기는 조심스럽다. 대신 우리나라 얘기를 하자면, 철학 교육은 학생들이 독립된 사고를 계발하고, 비판정신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중국 철학 분야의 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단히 자신들의 사상을 개조당해 왔다. 이른바 교조주의의 폐해를 깊게 받아온 것이다. 개혁개방 이래 사상해방을 제창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사상해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은 우리가 완전히 교조주의를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최=현대의 철학 연구는 너무 전문화된 나머지 대중들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생활 세계와는 유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철학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탕=중국이나 동양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경지를 추구한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는 철학이다. 최근 중국 철학계에서 위단(于丹·베이징사범대) 교수의 『논어』출판과 대중강연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는데,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자 사상을 해석하는데 좀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강의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고전에 내포된 충만한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세계화에 대한 철학적 대응은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탕=중국은 현대화로 가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서양의 현대화 경험을 더 흡수해야 한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든가 ‘동양의 세기’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이른바 ‘서양 중심론’이 옳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동양 중심론’도 옳지 않다.

 최=동아시아 전통철학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리더는 어떤 지도력을 가져야 할까.

 탕=우리가 선출하는 지도자가 고상한 도덕과 멸사봉공 정신이 있고, 예리한 정치적 안목을 갖추고 자기와 다른 의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며, 잘못된 것을 용기 있게 바로 잡는 고도의 철학적 지혜를 갖춘 사람이길 바란다. 중국 전통문화 속에서 동경하는 이른바 ‘성왕(聖王)’일 것이다. 이런 성왕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출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많은 의문이 든다.

정리=배영대 기자


◆탕이지에=1927年 톈진(天津)생. 베이징대 철학과 졸업. 1980년대 후반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중국 문화의 방향을 탐구하던 ‘문화열(文化熱) 논쟁’의 중심에 서서 “정신문화의 개혁 없이는 중국의 현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위진남북조시기의 도교』『중국문화전통 속에서의 유교·도교·불교』등의 저서가 있다.


 ◆최진석=1959년 생.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 . 저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주해서 『노자의소(老子義疏 ) 』 등이 있다.




깊이 읽기

憂患意識<우환의식>
지도자는 세상에 대해 걱정해야


구체적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전통 철학의 출발점이다. 지도자나 지식인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일반인들보다 먼저 세계의 문제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거기에 잘 대처하려는 책임의식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자나 맹자가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새 사회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도 모두 우환의식에서 나왔다. 『주역·계사전』에는 “주역을 지은 사람도 우환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作易者其有憂患乎)”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남긴 다음 구절 역시 자주 인용된다. “(지도자는) 이 세상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이 세상 즐거움을 뒤에 누린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和而不同<화이부동>
서로 다른 것 인정하는 게 군자


『논어』의 ‘자로(子路)’편에 나온다. 군자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끼리의 조화를 도모하는데, 소인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엇이나 같게 만들거나 혹은 같아지려고 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뜻이다. 탕이지에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고 한담하는 자리에서 중국 철학의 정신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인데, 그 ‘천인합일’을 이루는 핵심적인 방법이 화이부동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국어(國語)』에도 나오듯이, 다른 것들끼리 만나서 조화를 이루고 협조하면 만사 만물이 번창하지만, 차이를 말살하고 동일하게 해버리면 지속되지 못한다(和實生物, 同則不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0
 
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① 시리즈를 시작하며
 
중앙일보·세계철학대회 조직위 공동기획 - 생각의 힘!
이명현 한국조직위 의장 “문명 전환기엔 새 틀 필요 생각의 힘으로 세상 바꾸자”
<script src="http://article.joins.com/ui/javascript/joins_find_window.js" type=text/javascript></script>
관련기사
관련링크
“문명의 대전환점에 서있어요. 19세기 근대문명을 리드한 서양 앞에 그동안 동양은 꼼짝을 못했어요. 동양이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이 시기에 새로운 문명을 전망하는 철학적 논의의 장이 서울에서 펼쳐지는 의미가 상당히 커요.”

‘2008 서울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 의장 이명현(65)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올해는 가장 바쁘면서 보람있는 한해가 될 듯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철학 전공자이지만 그는 동양 전통의 음양 개념을 매우 중시했다.

“우리가 대회를 유치할 때만 해도, 서양철학자들은 동양에 종교만 있지 무슨 철학이 있느냐, 동양에서 무슨 철학대회를 하느냐는 반응들이 있었어요. 이번 대회가 서양인에게도, 우리 동양인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

이 의장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 존재인 인간의 생각은 상황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철학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다양성을 용인하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철학도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의 인터넷 아이디는 ‘noism’이다. no+ism(이념), 즉 어떤 극단화된 입장이나 이념에 구속되기를 거부한다는 의미다. 이 의장은 군부독재를 비판하다 전두환 정부에 의해 서울대 교수직을 해직당했었고, 김영삼 정부에선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철학이란 용어부터 새로 정의해 달라.

“철학이란 결국 문법이다. 인간과 세계를 열어보기 위한 틀이자 행동의 준거다. 각 시대마다 맞는 문법이 있다. 문명의 전환기에 ‘신(新)문법’이 필요하다. 영원한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변한다. 나는 줄곧 ‘곳때봄’이란 말을 철학의 의미로 사용해 왔다. 어느 곳에서, 어느 때에, 어떻게 봤나 하는 것이 철학이고 사상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 존재다. 조건화된 인식(conditioned epistemology)을 할 수 밖에 없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이 갑자기 쉬워진 느낌이다.

“과거의 철학은 너무 거품을 많이 만들었다. 인간이 신이나 될 수 있는 것처럼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점차 알게 됐다. 철학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끼리 사용하는 용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 철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생활인에게 철학이 어떤 삶의 안내 역할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경제를 전문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당선됐다. 경제와 철학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일반인들에게는 경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중앙일보 기획 시리즈와 세계철학대회가 우리 문명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보다 큰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경제적 향상만이 아닌 우리 삶 자체가 업그레이드되는 성찰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실용주의가 유행이다. 정확한 철학적 의미는 뭔가.

“미국에서 시작된 프라그마티즘을 일본에서 실용주의로 번역했고 우리가 따랐지만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프라그마티즘의 희랍어 어원인 프라그마는 실천과 실제를 의미한다. 물리 이론으로는 실험을 통해 실증을 해보는 것을 가리킨다.”

-생각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현재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환경 위기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하원의원이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가 한 토론에서 중동문제의 해답을 묻는 질문에‘철학을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중동 문제는 기름 전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 환경문제도 해결 안되고 석유전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 동아시아 철학의 장점은.

“지금까지는 같은 것끼리 사는 데 익숙했다. 이제는 다른 것과의 공존을 존중하는 새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점에서 음양 개념은 동양의 중요한 유산이다. 음과 양은 다르지만, 음이 없으면 양이 없고 양이 없으면 음이 없는 관계다. 서로 다른 것들이 상대방이 안 가진 것을 보충해주는 보완관계이자 상생관계를 표현한다. 그런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오늘날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사고를 지배한 변증법은 다른 것은 반대이고, 모순이며,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서양철학 전공자이면서 동양적 가치에 상당히 열려있는 듯하다.

“ 우리 학계의 가장 큰 병폐가 바로 전공병이다. 20세기가 분과 학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융합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지향하는 시대다. 다른 것이 아름답다 . 다른 것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각으로 바뀔 때 세계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

제 22차 세계철학대회 자원활동단 발대식에 참석하고서...

사용안함/短想 2008. 3. 2. 00:03

2. 12일 동생의 졸업식을 마치고나서 서울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고속도로를 타고 나름대로의 부푼 기대를 안고 4시까지 숭실대로 갔다. 세계철학대회 자원활동단 발대식에 참석하고 나서의 느낀점과 몇가지 알림 사항을 기록하겠다. 이 글을 보시는 많은 철학도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03년 터키이스탄불에서의 21차 대회까지의 5년마다 열리는 철학계 최대규모의 학술대회로 흔히 철학의 올리픽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WCP)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 전 세계 150여 개국 3,000여명의 철학자들이 모여 다양한 주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올해의 주제는 "오늘날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이다. 아시아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처음 시행하게되는 이 대회를 주관하고 기획하게 되는 여러 교수님들의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유럽 쪽에서 처음 시행된 행사라, 거의 모든 행사의 세미나라던가 세션이 유럽이나 영미철학 위주를 흘러갔던 것을 이번 행사에서는 동아시아 철학에 비중을 높이고 더 많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많은 참여와 경험을 위해 학생들은 참여비를 대폭 할인하여 5만원이면 등록가능하다고 한다.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7일간의 행사가 연속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그안에서 자원하여 행사에 봉사해줄 우리나라의 철학과 학생 및 인문사회분야 등 많은 학생들과 고등학생, 일반일에 이르기까지 200여명 정도의 학생들이 2월 12일 모여 발대식을 행사했다.

충북대 학생으로 유일한 나는 홀로 가서 좀 많이 뻘쭘했다. 서울경기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원할동단 임원들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준비해온 모습이 여력했다. 세미나도 준비하면서, 스스로 철학의 학문 폭을 넓히려는 좋은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이제부터 그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가지이다. 그들은 이 큰 행사 하나로 모든 것이 변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다. 자원활동단 분과 담당하시던 이화여대 이지애 교수님 역시 이번 세계철학대회를 통해서 그 동안의 철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현실을 고쳐나갈 수 있다고들 크게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여기에 참여하는 우리들이 해야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세계철학대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큰행사가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또한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거대한 학술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내 주변만 하더라도 철학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100이면 100은 모른다는 것이 현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 철학도들이 앞장서서 알리면 되지 않느냐 하는 반론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원활동단 임원들이 두발로 힘들게 뛰어다닌 서울, 경기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 학술대회에 대해서 아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관심하게 있는 철학도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다. 크고 거대한 행사 하나로 철학에 대한 인식과 철학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기대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철학의 문제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천지이다. 철학과 다닌다고 하면 철학관 차릴 거냐고, 점이나 관상을 볼 줄 아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또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그들에게 자신이 공부하는 철학에 대해 자신있게 무어라고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런 가장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이 땅에서의 철학은 몇년이 가도 그 밥그릇을 제대로 찾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것은 가장 작은 곳에서부터 근본 뿌리가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그 줄기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문제들은 절대 고쳐질 수가 없는 것이다. 철학은 없어져야할 학문이 아니며, 불필요한 학문도 아니고, 남의 관상이나 점을 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이 왜 아닌지에 대해서 철학하는 자신이 먼저 알고 인식하고 남에게 자신의 입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먼저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의 철학은 여전히 비웃음 받고, 괄시 받는 학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문제들에서 출발하여 점점 철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철학도들의 역할일 것이다.

여기서는 그 해결방도에 대해서 자세히 논하지 않겠다. 본인도 항상 그 문제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그 근본 원인을 찾아나가야할 노력이 필요하다.

'사용안함 > 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0) 2009.04.04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필요성  (0) 2008.06.27
민중가요의 의미와 역사  (0) 2008.03.09
카일리룰  (0) 2008.03.02
숭례문 화재에 대하여...  (0) 2008.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