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철학/세계철학대회 2008. 3. 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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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철학자 7명 릴레이 인터뷰 ④ 스에키 후미히코 도쿄대 교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어”


대담 = 허우성 경희대 교수

  일본에서 연간 생산되는 불교학·인도학 관련 서적이나 논문의 양은 일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 생산되는 양보다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말 일본의 제국주의 시기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근대 ‘일류(日流) 불교’가 20세기 세계 불교학계를 제패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 불교계를 리드한 일본 학자는 대부분 문헌학자였다. 문헌학의 축적된 자산을 기반으로 이제 일본 불교연구는 사상사쪽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불교를 일본사상사의 맥락에서 새롭게 연구하는 흐름의 선봉에 선 학자가 스에키 후미히코(59·사진) 도쿄대 교수다. 그는 불교 내 종파나 인물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연구 방식을 지양한다. 그의 방법론은 ‘불교를 넘어서’다. 불교를 불교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사상사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스에키 교수는 일본 불교의 특징을 배경으로 삼아 ‘사자(死者)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장례식 불교’라는 부정적 평가를 오히려 일본 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승화시키며, 오늘날 불교가 인류에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으로 재해석해 냈다. 허우성 경희대 교수가 스에키 교수와 이메일 대담을 나눴다.

 허우성(이하 허)=한국인들은 538년 백제의 성왕이 일본에 불상과 불경을 처음 전한 일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그 후 1500년 간 일본 불교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선 잘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이하 스에키)=일본 불교는 쇼토쿠 태자 이래 사이초 ·구카이 ·신란 ·도겐 ·니치렌 같은 명승대덕을 배출하면서, 인도·중국·한국의 불교와는 또 다른 일본 불교를 만들어 왔다. 일본 불교는 불(佛, 부처)·법(法, 교리)·승(僧, 교단) 삼보 가운데 부처 숭배가 중심을 이루었고, 사자(死者)에의 공양이 불교 신앙의 주요 활동으로 간주된다.

 허=일본 불교를 ‘장례식 불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스에키=집집마다 불단을 차려 놓았고, 죽은 부모의 영혼을 위해 일정한 시기마다 절에서 천도제를 지낸다. 이같은 양태를 ‘장례식 불교’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 널리 퍼져 있는 불교식 장례는 일본인에게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관념을 가르쳐 왔다. 특히 무상감(無常感)을 일본인의 심성에 심어주었다. 이런 영향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허=당신의 불교관인 ‘사자의 철학’은 어떤 의미인가.

 스에키=불교를 해석하는 법은 다양하다. 나의 해석법은 ‘죽은 자에 대한 불교철학’ 곧 ‘사자론’이다. 현대인은 오만해졌다. 죽음을 상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죽은 자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도 불교도들이 부처의 죽음 이후 부처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서(禪書)인 『벽암록(碧巖錄)』에서 운문(雲門)선사는 죽은 석가모니 부처와 문답하고 있다. 고불(古佛)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를 볼 수 있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허=신도(神道)와 불교의 관계는 어떤가.

 스에키=신도와 불교를 나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로 파악한다. 이 또한 일본 불교의 주요 특징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 의해 양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도와 불교의 분업체계가 일찍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두 종교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인간의 탄생과 결혼, 즉 생과 관련된 경사스러운 일은 신도가 담당하고, 죽음과 관련된 일은 불교가 맡고 있다. 한국·중국과 다른 점이기도 한데, 일본에서는 유교보다 불교의 영향력이 더 강했다. 기독교는 결혼식을 담당하곤 하는데 영향력이 미미하다.

 허=당신의 주저인 『일본불교사』 결론 부분에 “무서운 늪지인 이 나라에서 불교의 뿌리는 과연 썩지 않고 자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보이는데, 무슨 뜻인가.

 스에키=불교의 토착화와 관련된 문제다. 불교가 뿌리내린 곳이면 어디서나 토착 종교들과 결합하며 변화했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게 변질된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일본 불교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일본 불교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일본의 승려들이 대처(帶妻·부인을 얻음)와 육식(肉食)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한국불교에도 순수성과 세속화가 공존한다. 무속과의 결탁이라든가 권력·금력에 대한 집착이 세속화의 사례다.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이행하며 계율의 엄격성이 이완되는 것은 보편적 현상 아닌가.

 스에키=글쎄다. 일본의 승려들은 대승불교에서는 계율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보살의 내면적 정신이 계율의 외면적 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말은 멋지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성실한 수행을 못하는 행태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허=당신은 불교가 일본 근대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한국 불교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일본 불교가 근대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스에키=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일본 불교의 관계가 복잡하고 중요한데, 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다. 일부 불교도들이 전쟁에 반대하기는 커녕 장려한 것은 문제였다. 죠도신슈(淨土眞宗)의 지도자 키요자와 만시(淸澤滿之)의 제자들 중 일부는 아주 공격적이어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미타불의 힘에 대한 순종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1945년 이후 불교 각 종파들이 이에 대해 회개하고 책임을 인정했다. 물론 모든 불교도들이 전쟁에 협력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종교 문제는 국가나 전쟁 등의 세속 문제를 초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전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허=19세기 이래 지속된 동양의 서양 배우기는 철학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불교가 세계를 리드한 점은 돋보인다.

 스에키=일본 지식인들은 근대 서양철학을 성실하게 수입했다. 불교가 예외적이라고 하지만, 크게 보면 서양 배우기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교를 포함한 동양 철학이 서양의 변화에 자극을 주어야 하고, 그런 긍정적 자극을 통해 전쟁과 평화, 환경 파괴 등 지구촌의 현안을 푸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 철학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철학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동양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스에키=달라이 라마의 활동 같은 경우다. 불교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간디의 철학도 중요하다. 동양에는 불교 이외에도 힌두교·유교·도교·이슬람교가 있다. 불교에도 또 여러 전통이 있다. 이런 다양성 자체가 동양 전통의 주요 특성 중 하나다. 이런 다양성 속에 서양 철학의 난국과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수많은 철학적·종교적 원천이 있다. 그 원천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정리=배영대 기자

 ◇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1949년생. 도쿄대 인도철학과 졸업. 1978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수료. 불교학·일본 불교사 및 불교사상사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힘. 대표작인 『일본불교사』를 포함해 『일본불교사상사론고』『중세의 신과 부처』『근대 일본과 불교』『메이지 사상가론』『벽암록을 읽는다』 등의 저서가 있다.


 ◇허우성=1953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경희대 부설 비폭력연구소 소장. 저서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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