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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필요성

사용안함/短想 2008. 6. 27. 13:48
요즘있는 촛불집회의 시위현장에서의 무력행사와 경찰들의 무자비한 시위진압 모습에 너무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항상 볼때마다 마음을 조린다. 시작부터 비폭력을 주장했던 촛불집회... 어째서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한 것일까... 물론,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가의 마음대로 집행을 해대는 이명박 정부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 다음은 촛불집회의 비폭력 정신을 잊어버리고, 무력을 행사하게된 우리 국민들, 또

그에 맞대응하는 국가 권력... 이제는 누가 잘못했다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상황까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변함없이 나쁜 것은 이명박일테지만...

다음 사진들은 어제 밤부터 시작해서 오늘 새벽까지 있었던 시위들을 모아논 사진이다.
 

광화문에서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아되는 장면, 시위로 인해 6.25사진전 작품들이 훼손된 장면

  
경찰이 던진 벽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시위대     새총까지 들고 경찰을 조준하는 시위대

  
시위자를 연행하는 경찰                                     쇳파이를 든 시위자와 방패를 든 경찰의 대치

  
시위대를 강제연행하는 경찰                               버스를 끌어내는 시위대

  경찰을 폭행하는 시위대

   서울코리아나호텔에 난입하여 호텔직원을 폭행!


무서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지금 너무 극단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정부가 하는 짓은 너무도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중간에 끼인 사람들이 불쌍하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광화문이나 시위가 한참 진행중인 곳에서는 상가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장사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시위대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사옥으로 가서 한바탕하고 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과정 속에서 호텔직원은 폭행을 당했다.
 
이러한 사태는 국민들 스스로가 불러온 또 하나의 잘못이다. 스스로 비폭력을 주장했으면 걸맞는 행동과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한쪽에 맞서서 같은 폭력을 행사한다면,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계속 반복되고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가 하는 시위의 본질을 깨닫고, 비폭력을 주장하고 있다면 자신들 또한 비폭력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후 끊임없이 독립을 주창한 간디는 비폭력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 안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자기 고통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에 대한 의식을 깨우치고, 훈련된 평화적 저항을 위한 능력을 배양하고, 공동의 고통에 익숙하게 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스와라즈(자치, 독립)에 가까이 가도록 한다."고 간디는 주장하였다. "상대방과 당사자가 모두 명예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설득이 될때까지 진리를 주장해야 하며, 그것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1924년 비콤사원로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소개하겠다. 이 운동은 16개월 이상 지속되었으며, 그 목적은 천민에 대한 사원 입구 통로 사용의 금지를 철폐하는 것이었다. 천민들이 그들의 주거지로 갈 때 그 길로 못가면 멀리 돌아서 가야만 했기 때문이며, 힌두교의 오점인 천민제도의 점진적인 폐지를 위해서였다. 이것을 위해서 금지된 도로를 따라 천민과 카스트 힌두교도들이 행진하였으며, 브라만들에 의해 공격을 받거나 매를 맞게 될 때 보복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체포에 순순히 응하며, 그 도로를 두 차례 행진했고 또 그 운동에 참석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러면 제 2의 지도자들이 나와서 운동을 지도했고 그들은 또 체포되었다. 경찰의 바리케이트가 쳐지고, 도로 위에서 경찰과 반대방향에 자리를 잡고 매일 같이 대치하였다. 비가 오면 그 비를 맞으며 서있는데, 어떤 날에는 어깨까지 물이 차는 일도 있다고 했다. 첫 번째 협상에서 간디가 참석하였고, 바리케이트를 제거하도록 부탁했다. 그러면 더이상 그 도로를 행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경찰은 바리케이트를 치웠고, 운동에 참석한 사람들은 더 이상 행진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고수하였다. 그러자 브라만들은 그들의 행동에 당혹해했다. 당연히 운동에 참석한 자들이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25년 가을 브라만들은 항복하고 기꺼이 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였다. 도르는 모든 통행자에게 개방되었고, 비콤사원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브라만들도 사원로를 개방하였다. 이로 인해 천민들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비콤사원로 운동 뿐만 아니라 바르돌리 농민운동, 아메다바드 노동 운동, 로울래트 법안에 대항한 운동, 소금 운동 등이 있다. 이처럼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자기 고통을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 이론적으로 더 파고들지는 않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설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운동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교육되고 선서되어진다. 간디는 폭력을 통한 혁명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고 있었다.

우리도 이점을 깨닫고 본받아야 할 듯하다. 진정한 비폭력 운동을 위해서라면, 폭력의 행사를 멈추고 멈춰서서 자기고통을 인내하며, 국가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촛불시위는 누구 한명이 지는 게임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잘 살고자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패자도 승자도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잘되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둘로 나누면 어떡할 것인가. 함께 사는 길을 걸어야 하며,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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