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나(2005) _ 가치론연습 _ 리얼리즘과 영화에 관한 테제

철학/가치론연습 2008. 6. 3. 02:01

영화 첫장면 테헤란. 어딘가 분주할 것 같지만 하늘밑에 고즈넉하게 깔린 먼지같은 막이 열정과 활기의 발산을 막습니다. CIA 요원 밥은 외부와 차단된 차고안에서 정체를 정확히 알수 없는 이와 미사일 거래를 합니다. 물건을 내놓고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면 그만인 비지니스. 그러나 밥은 미사일의 사용 내역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받아쳐 나온 말을 신경끄라는 매몰찬 소리일 뿐.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한복판 도로의 침묵을 깨뜨리는 자동차 폭파 소리가 영화 관람객의 청각을 놀래킵니다. 그러나 밥은 아무 미동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갑니다.


스위스 투자자문 회사에 근무하는 .우연한 기회로 레바논 왕자의 초청을 받아 파티에 참석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들이 풀장에 뛰어들었다가 감전사합니다. 눈앞에서, 그것도 화기애애한 파티장에서 일어난 자식의 죽음.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만나줄 의사조차 표현하지 않았던 왕자는 그 사건과 연관지어 그에게 접근하게 되고, 그는 순식간에 왕자의 경제고문이 됩니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가면, 정유계는 거대 정유기업간의 합병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그 와중에 변호사 베넷 홀리데이는 그 합병건을 담당하게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법률적 문제라던지 협상이 진행되었던 과정에서 있었던 석연찮은 점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그는 깊은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두 정유업체의 합병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레바논 거주 파키스탄인도 있습니다. 개 중에 어떤 이는 점점 서구의 부조리한 세계 운영과 석유를 둘러싼 암투의 그림자를 보게 되고, 결국 캠코터를 향해 유언을 차분하게 읊어나갑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구성의 '트래픽'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시리아나'역시 '트래픽'과 매우 비슷한 이야기 체계를 가지고 있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특정 문제에 맞닥드려 서로의 간극이 좁아지거나 아예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테크닉은 시리아나에서도 여실히 구사됩니다. 트래픽의 각본을 쓴 스티븐 개건이 감독과 각본을 겸한 '시리아나'는 전작 '트래픽'보다 한층 직접적이고 스케일또한 커졌습니다. 영화는 검은 황금 석유을 둘러싼, 석유만큼 검은 비리들이 판을 치는 실상을 적나라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흐물흐물하지도 않게 묘사함으로서 그 주제로서 긴장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서구와 이슬람의 갈등은 종교의 차원이 아닌 고갈될 날이 머지않은 석유를 둘러싼 알력다툼이라고 위치는 다르지만 석유문제에 관해 우리와 느끼는 처지나 강도는 비슷할 네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릴러라고 하기엔 내용이 워낙 복잡하고, 감독 자체도 그다지 스릴러적 요소에 비중을 크게둔것 같지 않습니다.  


스토리는 그 자체의 구성뿐만이 아니라, 인물의 다차원적 성격까지 더해져 점점 복잡하게 진행되갑니다.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아랍 출신 졸부들을 그다지 좋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지는 않지만, 오직 한 사람 레바논 국왕의 첫째 왕자만이 근대적 마인드를 가지고 레바논뿐만 아니라 대서구 관계까지 바꾸려는 긍정적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비관성 가운데 유일하게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죠. CIA 요원 밥은 자신이 뭐 하는지 모른체 계속해서 방황하고 있고, 로버트 역시 아들의 죽음과 맞바꾼 꿈에 한껏 취해있고, 베넷은 불법과 합법사이의 절충안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죠. 어린 파키스탄인 역시 어느 정도 긍정성을 머금고는 있으나 그의 힘은 미약했고 결국 시도할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가지, 테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레바논 왕자는 보다 구체적이고 확고한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재력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주도의 세계판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위계승자리를 한가로이 당구나 치는 동생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하지만 긍정성을 벗어나 희망의 관점에서 찾아본다면, 저는 오히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로버트 우드먼에게서 그 것을 찾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드먼이라는 캐릭터가 석유를 둘러싼 영화속 암투속에서 감독이 관객들에게 선사한 유일한 인간성이 부연된 인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쩌면 아들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자임에도 왕자라는 신분때문에,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미래를 향한 비전과 함께 따라올 명예과 금전적 이익 때문에, 왕자에게 탄복하고, 그의 심복을 자처한 우드먼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가정에는 점점 소홀해지는건 당연지사. 그러다 왕자가 폭탄테러로 죽게되고 순식간에 모든게 날아간 우드이 찾아간 곳은 가정이었습니다. 남은 어린 아들은 아빠에게 달려가고, 아내는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짓고 말이죠.


다양한 이야기들이 중첩되는지라 주연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배우는 없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무난한 연기를 펼쳐주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작 '마이클 클레이튼'의 연기가 훨씬 훌륭했다고 판단하는 입장이지만 이 영화에서도 조지 클루니는 강한 역을 들고나와 역시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동안 대외적 이미지와는 달리 영화속에서는 잘생긴 얼굴을 활용한 역할을 맡아온 그에겐 이 영화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맷 데이먼 역시 기능적으로 무난하게 연기한 편이였고요. 다만 제프리 라이트는 역할 자체가 심심했던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임에도 다른 캐릭터에 눌린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자살테러의 파키스탄인을 연기한 카이반 노박도 영화 흡인력에는 전혀 지장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인터뷰에서 시리아나에 대해 '이 영화의 스타는 각본'이라고 말하면서 이 영화는 특정 배우가 빛을 발하는 영화가 아닌 앙상블의 결과라고 설명한바 있는데,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마이클 무어와 같은 다큐멘타리류 영화를 제외해 놓고 최근 할리우드 주류안에서 가장 정치적인 영화지만 결코 흥분하지 않는 시리아나. 트래픽의 엔딩장면 기억나시는지요? 시리아나의 엔딩을 장식하는 새하얀 화면과 그 직전에 등장한 씬 역시 보기에 따라 이런저런 해석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수정 : 윽! 제가 포스팅하면서 순간 '트래픽'과 '크래쉬'를 혼동해서 써버렸네요. 아카데미 작품상과 돈 치들 부분은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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