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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데런 <오후의 올가미> _ 가치론연습 _ 사실주의와 영화에 관한 테제

철학/가치론연습 2008. 5. 18. 19:34





*실험영화 영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예술가 마야 데렌이 1943년,
남편이었던 Alexander Hammid와 공동 제작한 첫 영화. 1917년 키에프 출생으로, 40년대와 5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핵심 인물이 되었던 그녀는 실험영화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은 작품들과
부두교 광신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61년 뉴욕에서 사망했다.(씨네서울)







*마야 데렌은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1917년(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해) 4월 29일에 태어났다.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 마리 피들러와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 솔로몬 데렌스코프스키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의 영향 아래 일찍부터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자라났다. 하지만 1922년 계획적인 유대인 학살, 경제적 급변, 그리고 정치적으로 트로츠키에 가까웠던 그녀의 아버지의 축출에 따라 몰락한 이 유대계 가족은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의 형제들과 함께 뉴욕 주 시러큐스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병원을 개업했고, 이때부터 가족은 공식적으로 '데렌'이라는 성을 쓰기 시작했다.  

1930년 그녀의 부모가 이혼함에 따라 데렌은 스위스에 있는 기숙학교인 제네바 국제학교로 보내졌고, 거기서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1933년에 미국에 돌아온 그녀는 그후 시러큐스 대학(저널리즘을 전공했으며, 아울러 영화에의 열정이 처음으로 점화된 시기이다), 뉴욕 대학, 스미스 칼리지에서 공부하였으며, 1939년에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그녀는 여러 작가들과 출판업자들의 조수로 일하는 한편 시詩에 몰두했다.

그녀가 비서로 일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며 인류학자인 캐서린 던햄이었다. 캐서린은 블랙 댄스(흑인들이 추던 리듬 댄스의 일종)의 창시자이자  1936년에는 아이티에 대한 인류학 논문을 발표한 저자였다. 던햄의 작업을 돕는 동안 데렌은 '춤에 있어서의 종교적 몰입'이라는 에세이를 쓰고 싶은 강한 영감을 받게 되었다. LA에서 던헴과 지내는 동안 데렌은 두 번째 남편, 체코인 영화제작자 알렉산더 하켄쉼드(나중엔 함미드)를 만나 결혼했다. (데렌은 1935년에서 1938년까지 학생 신분으로 반전 운동을 하면서 한 러시아 사회주의자와 결혼생활을 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물려준 약간의 유산으로 중고 16미리 볼렉스 카메라를 샀는데, 이 카메라로 남편과 함께 헐리우드에서 그녀의 첫 번째 영화이자 대표작인 <오후의 올가미>를 찍었다. 이 영화는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들을 위한 길을 닦았으며, 최고의 실험영화 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43년 데렌은 뉴욕으로 돌아와 마야(붓다의 어머니의 이름이자, 물의 古語이며 힌두 신화에서 '환영의 장막'이란 뜻)라는 새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그녀가 주재하는 사교모임에는 Andre Breton(앙드레 브레통:쉬르리얼리즘의 대가), Marcel Duchamp(마르셀 뒤샹:변기 갖다 놓고 샘물이라고 이름 붙인 프랑스 화가), Oscar Fischinger와 Anais Nin(프랑스의 여성 일기 작가) 등이 참여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Willard Maas, Kenneth Anger(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한 감독), Stan Brakhage(스탠 브래키지:미국의 유명한 실험영화 작가, 올해 사망.), Sidney Peterson, James Broughton(제임스 브로튼: 게이 영화 감독이자 시인, 극작가), Gregory J. Markopoulos와 Curtis Harrington(마타 하리의 감독) 같은 영화 감독들의 작품에서 그녀의 영향력이 표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은 그녀가 [At Land(1944)], [Study in Choreography for Camera (1945)] 등의 선구적 16미리 영화들을 창조한 시기였다. 1946년, 그녀는 뉴욕에 있는 프로방스타운 플레이하우스의 밤시간을 빌려 '세 편의 버림받은 영화들'이란 타이틀로 위의 작품들(그리고 다른 한 작품)을 며칠 동안 상연했다. 이 대담한 시도는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를 스스로 배급하려는 다른 영화감독들을 고무시켰다. 같은 해에 그녀는 구겐하임 재단이 최고의 영화감독들에게 수여하는 '영화부문 창조상'을 받았다. 그녀의 사진과 에세이들 -그 중 하나가 《An Anagram of Ideas on Art, Form and Film》-이 이때부터 전위적인 출판물로 서서히 주목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트랜스(trance)'와 의식儀式에 대한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춤과 아이들의 유희, 그리고 그레고리 베이트슨(문화인류학자)과 마거릿 미드(미국의 여성 인류학자)가 발리 섬의 트랜스와 춤(Trance and Dance in Bali. 1952 filmed 1936-8. 20 min.)을 소재로 만들고 있었던 민족지학적 영화들을 함께 녹여내는 것이었다.
*트랜스는 무아지경이나 황홀, 도취-부두교에서 말하는.

1947년 칸느는 〈오후의 올가미〉에게 16미리 실험영화 부문 그랑프리를 안겨주었다. 이것은 칸느가 이 부문에서 미국에게, 그리고 여성영화인에게 최초로 수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데렌은 같은 해 공동감독이었던 남편과 이혼했다.

1947년에서 1955년 사이, 데렌은 아이티 섬에서 21개월 동안 부두교 의식과 춤을 영화에 담았다. 그 결과 [the Haitian Film Footage]라는 이름으로 몇 시간 분량의 필름으로 남았는데, 최종 영상물은 미완이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지도 아래, 그녀는 부두교에 관한 상세하고 전례가 없이 뛰어난 민족지학적인 연구서 《신성한 반인반마:아이티의 살아 있는 신들(1953)》을 썼다.  

그녀의 마지막 영화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특별 개봉한 〈The Very Eye of Night (1955)〉였다. 제작자가 재정적 어려움에 빠져 이 영화는 1959년까지 뉴욕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1960년, 데렌은 18살 연하인 일본인 음악가 테이조 이토와 결혼하는데, 그는 1950년대 중반 데렌이 마지막으로 아이티 여행을 갔을 때 그녀와 동반한 사이였다. 이토는〈The Very Eye of Night〉를 포함하여 데렌의 영화 두 편의 사운드 트랙을 맡았다. (또 한 편은 '오후의 올가미')

1961년 10월 13일, 데렌은 갑작스레 뇌출혈로 죽고 말았다. 이 때의 나이가 44세였다. 뇌출혈을 일으킨 정확한 원인이 무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부두의 저주'라는 여러 가지 소문도 난무했다. 즉, 암페타민(환각성분)이 함유된 비타민 과용, 이른바 '닥터 필굿 Dr. feelgood'(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 환각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이토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을 두고 뜨겁게 싸웠던 법정 논쟁도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마야 데렌의 영화적 비전은 세상의 모든 영화 감독들(아방가르드는 물론 다른 장르들의)에게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녀의 작품은 세계의 유수한 영화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최근의 특별판 DVD 발매(마야 데렌 영화 모음)로 그녀는 더 많은 관객을 얻고 있는데, 여기엔 [Haitian footage]에서 발췌해서 만들어진 영화들도 들어가 있다. 1985년에는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는 그녀가 독립영화에 기여한 성과를 기리기 위해 '마야 데렌 상'을 제정했다. 뉴욕에 있는 앤솔로지 필름 아퀴브스는 66좌석의 '마야 데렌 씨어터'를 세워 독립영화들의 필름과 비디오를 전시하고 있다. 최근 *〈우트네 독자:UTNE READER〉는 2003년 예술분야 특별판에서 마야 데렌을 '여전히 중요한 40명의 과거의 거장' 중의 한 명으로 뽑았다. 아주 당연하게!

*UTNE READER: Eric Utne가 1984년 설립한 UTNE READER는 다양한 대중매체들이 소개한 2,000개 이상의 방송 기사 및 정보를 재 출판함으로써 우리 시대 문화의 흐름과 새로운 문화적 비전을 제시하려는 미국의 대안문화잡지.



*translated from 'http://www.zeitgeistfilms.com/current/mayaderen/mayaderenbio.html'
*translated by p & k.k.h




**데렌에 관한 다큐영화도 있다고 하더군요

<마야 데런의 거울 속 / In the Mirror of Maya Deren>
*Austria | 2001 | 103min | Color | 35mm
Director_ 마르티나 쿠들라첵 | Martina Kudlacek
Screenwriter_ Martina Kudlaek
Cinematography_ Wolfgang Lehner
Editor_ Henry Hills
Sound_ Jan Mclaughlin
Music_ John Zorn
Cast_ Stan Brakhage, Maya Deren, Jonas Mekas
*비엔날레 2001 비엔나 영화상 수상

출처 : http://www.zeha.co.kr/cgi-bin/read.cgi?board=nagne&y_number=29&nne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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