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사회사상

철학 2008. 5. 12. 19:06

출처 연화정(^_^)(蓮花亭)_()_隨處作主立處皆眞_()_ | 여련화
원본 http://blog.naver.com/corea_happy/120050799935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27집 2002․제1권



간디의 사회사상
조  수  동(경산대)

 [한글 요약]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남아프리카에서는 억압받는 인도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시작되었지만, 인도에서는 민족의 독립운동, 더 나아가 이상사회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간디는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현대 물질문명에 반대하고 있다. 간디가 생각한 이상적 사회체제는 촌락공동체였다. 그것은 자급자족적이며, 평등하고 정의로우며, 도덕심으로 무장된 주민들의 자치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계급과 차별이 없는 무정부사회이다. 어린이들은 자기 능력에 맞는 공작교육을 받게된다. 이러한 공동체를 이끄는 근본적인 원리는 사랑과 봉사이다.

간디의 이러한 이상사회 사상은 무정부, 사적소유 부정, 평등, 노동자에 대한 구원과 노동 중시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유사하지만, 국유화, 정신과 물질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양자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간디의 이상사회는 오히려 무력이나 전쟁을 배제하고, 문명의 이기를 반대하고, 무소유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의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노자의 이상사회관과 일치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주제분야 : 인도철학

주 제 어 : 간디, 사회사상, 사티아그라하, 이상사회, 노자, 무정부

 1. 서언


간디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네루의 “방대한 농민대중의 이상적인 화신”1)이라 말이나, “3억의 인구를 눈뜨게 하고, 대영제국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으며,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적인 원동력을 도입했던 위인”2)이라는 로망 롤랑의 말과 같이 간디는 대중들을 자각시켜 독립을 쟁취한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된다.

한편 그는 혁명적, 보수 반동적, 몽상적인 정치가로 평가되기도 하고, 또 실용적 이상주의자, 인도 혁명의 요나 jonah, 선동적인 승려, 종교적 열정가라 하여 대중들을 조종, 통제, 선동한 자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간디 자신은 “나는 공상가가 아니다. 실제적인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고 싶다”3)라고 말하고 있듯이, 그는 종교가이지만, 광신자는 아니었다. 그의 종교적 이상은 언제나 현실과 결부되었으며, 그의 종교적 신념은 항상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간디의 21년간에 걸친 남아프리카에서의 고통받고 억압받는 인도인의 인권과 권리보호를 위한 투쟁 즉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1915년 그가 인도로 귀국한 후에는 영국지배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키기 위한 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19년 2월에 발표된 ‘로울라트법 Rowlatt Act’4)과 ‘킬라파트 Khilafat’ 운동을 계기로 간디는 국민회의에서 평화롭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영국정부에 대한 시민 불복종, 비협력 운동을 전개했다. 그 운동은 하르탈 Hartal5), 소금행진(1930), ‘퀴트 인디아 Quit india’(1942)6) 등 3차에 걸쳐 대규모의 대중적 사티아그라하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의 사상적 근원은 그의 종교적 이상과 도덕의식에 있다. 처음 인도인의 인권과 권익보호를 쟁취하기 위해 시작된 이 운동은 인도의 민족 독립운동으로 전개되고, 궁극적으로는 그 자신이 그리던 이상사회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이상사회 건설의 실천은 아쉬람이라는 사티아그라하 실천 공동체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이 공동체의 거주자들은 서약과 개인적, 대중적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간디가 그리던 이상사회를 고찰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간디가 주장하는 사티아그라하의 내용을 간단히 고찰한 후 간디가 생각했던 이상사회를 고찰한다. 거기서는 간디의 이상사회 사상과 플라톤, 노자, 마르크스 등이 주장한 이상사회를 간략하게 비교하게 될 것이다.

  

2. 종교사상


“힌두에서 태어났으므로 나는 힌두로 남아 있다”7)라는 간디의 말처럼 간디의 종교적 모태는 힌두교이다. 간디는 그가 힌두교도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베다, 우파니사드, 푸라나, 그리고 힌두 성전의 이름에 의해 쓰여진 모든 것을 믿고, 신의 화현과 재생을 믿으며, 둘째, 베다적인 견해에서 Varnashrama를 믿고, 셋째, 소에 대한 보호와 숭배, 넷째, 우상숭배를 인정한다.8)

간디는 이같이 철저한 힌두교도였지만, 그는 진리와 사랑의 법으로 일관되어 있는 종교인이라 할 수 있다. 간디는 도덕적인 법, 즉 그가 진리 또는 사랑의 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그의 종교적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종교적 편견이란 없었다. 그는 기독교, 무신론 등 다양한 종교와도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간디에 있어 우주의 근본원리는 신이다. 신은 일체만물에 두루 편재되어 있다. 신은 일체 만물 즉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존재인 신은 진리이다. 더 나아가 간디는 진리가 신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이란 각 개인에 따라 일신, 다신, 무신, 범신 등으로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을 부정하는 자도 진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간디는 “진리에는 이중의 뜻이 없으며, 무신론자까지도 진리의 힘의 필요성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은 진리를 발견하려는 정열의 충동으로 그들 자신의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주저함 없이 부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하여 나는 신이 진리라기보다는 진리를 신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9)라고 하고 있다.

진리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제일원리이다. 간디는 세계의 주요한 종교들은 한결같이 진리와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였다. 진리에 대한 간디의 이러한 태도는 각 종교의 본질은 온 인류에게 공통되는 기본적인 도덕원리에 입각해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하고 있다. 진리와 사랑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인류는 진리와 사랑에 의해서 삶을 영위해야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간디는 진리 이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다. 모든 활동은 진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진리는 아힘사를 통해야만 발휘될 수 있다. 그는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인 것은 비폭력”10)이라고 규정한다. 인간은 그의 생을 살아가는 한 살생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아힘사의 실천이라는 자비심에 의해서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힌두교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종교는 비폭력을 근간으로 하는 평화와 사랑의 종교라는 것이 간디의 입장이다.

간디는 이처럼 종교적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재평가를 통해서 모든 종교심은 사랑 내지 아힘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11) 그러므로 그가 전개한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힌두교적 도덕원리를 기본으로 한 보편적 종교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사티아그라하는 힌두교의 진리와 사랑, 브라흐마차리야라는 자기 억제, 아파리그라하라는 자기 정화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여 여러 종교적 견해와 사상들이 함께 어우러져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3. 사티아그라하

 


간디는 자아실현의 길을 단순한 내면적 성찰이나 명상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진리실현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동포애의 헌신적 봉사를 통해서 찾았다. 이런 의미에서 간디를 실천적인 행동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인도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 한가운데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信愛의 길이 가장 인간다운 삶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간디의 이러한 행동주의 철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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